[동아광장/홍찬식 칼럼]韓中日역사전쟁

  • 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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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를 왜곡하기 위해 중국이 내세운 근거들을 보면 참으로 유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상식적인 눈에도 억지를 부리는 게 역력히 보인다. 중국은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다고 해서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것은 과거 조선에 조공을 바쳤던 여진족이나 오키나와가 한국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하기야 지난 수천년 동안 고구려가 한국 역사라고 말해 오던 중국이 몇 년 전 갑자기 태도를 바꿨으니 이치에 맞는 얘기가 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본질은 힘의 대결이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길거리에서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에게 정색을 하고 따져야 하는지, 아니면 떠들다 지칠 때까지 놔두어야 하는지 우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저들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문제가 학술 논쟁이 아닌 정치적 차원의 것임이 확연해진다.

고구려사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사회과학원은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해 “동북 변경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정 유지’라는 표현에 이미 답이 들어 있다. 1990년대 이후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상황 변화에 따른 대응인 것이다.

만주에 관광하러 온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만나 ‘우리는 한 핏줄’이며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외칠 때 중국은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여기에 뭔가 쐐기를 박을 필요를 느낀 것이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힘의 우위에 서지 않고서는 뜻대로 풀어 나가기 어렵다. 그들을 학문적으로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는 “역사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누가 역사를 쓰느냐에 따라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고 정반대의 역사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국의 제임스 프로드는 “역사란 어린애들의 글자맞추기 같아서 아무 말이나 마음에 드는 말을 이어붙여 놓기만 하면 된다”며 극단적인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역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의 역사 왜곡은 상징적인 사례다. 정치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오염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 벌어지는 역사 왜곡도 결국 정치적 의도이기 때문에 ‘역사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일본과 중국이 촉발한 역사전쟁에서 피해자로 머물러 온 한국도 또 다른 싸움에 뛰어들었다. 한국이 중국 일본과 차별되는 것은 물론 과거사 청산의 문제라는 점이다.

근현대사는 쉽게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역사학자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 해도 얼마나 평가가 양분되는가. 어떤 가치기준을 더 높게 둘 것인가의 판단도 쉽지 않다. 더구나 ‘역사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가가 직접 나선 것부터 공정하고 이성적인 평가를 기대하기에는 무리다. 권력의 굳은 의지 앞에서 누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겠으며, 내더라도 그 말이 먹혀들 수 있겠는가. 역사의 정략화가 뻔해 보인다.

▼내부 분열은 패배의 지름길▼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지만 그들은 내부 결속과 국익을 도모하려는 내부적인 동기라도 갖고 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사회 전체를 분열로 모는 길을 자초하고 있다. 밖에서는 우리를 우습게 보고 싸움을 걸어오는데도 우리는 내분을 서슴지 않으니 무슨 배짱인지 답답한 일이다.

역사를 정치로 더럽히는 것은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을 죄악이다. 하지만 역사가 힘의 논리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힘을 가진 사람이 역사를 써 나간다는 사실은 정의롭지는 않지만 현실인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경제적 힘마저 잃어버린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까 두렵다. 북한을 보라.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그토록 선전해 온 북한이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별소리 못하고 입을 닫고 있질 않은가. 그것이 역사의 냉엄한 현실이다. 정부는 이번 역사전쟁이 갖는 의미를 정말 바르게 새겨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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