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사랑시집 펴낸 부산지법 고종주 부장판사

  • 입력 2004년 7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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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0일 오전 8시 15분 부산행 시외버스 안. 경남 남해시 고향에 다녀오던 부산지법 고종주(高宗柱·56) 부장판사에게 벼락같이 시(詩)가 덮쳐 왔다.

“그 순간 이후 도저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밤이건 새벽이건 수시로 시상이 떠올라 3개월 만에 100여 편을 써 내려 갔습니다.”

그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네루다의 ‘시’라는 시에 보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라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내가 그런 경험을 했다”며 “시는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저절로 찾아오는 은총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쓴 시 86편이 묶여져 ‘우리 것이 아닌 사랑’(부산대 출판부)이라는 시집으로 지난달 세상에 나왔다. 그의 시들은 서정적인 언어로 아내와 딸, 이웃 그리고 자연과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한 동료 법관은 “고 시인의 표정과 목소리 움직임을 보면 젊은 시절 치열한 문학도였음이 분명하다”며 “마음만은 시인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갑자기 시상이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부산대 법대 재학시절 경남 진주시 개천예술제에서 시로 입선했으며,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국문과 학생이었던 부인 이인필씨(52)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부인 이씨도 학창시절 경북 경주시 신라문화제 시 부문에서 입선한 시인이다.

그는 ‘그 여자의 詩’에서 ‘보수동 뒷골목 뒤지며/한 권씩 사 모은 귀한 詩集 서른 권을 달랑/혼수로 가슴에 안고 온 女子…詩를 쓰는 아름다운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고/그러다가 미련 없이 딸들을 위해 교단을 내려와/주부로 詩 같은 삶을 살아 온 女子…’라고 부인을 그렸다.

그는 “20년 넘게 판사로 지내며 안타깝고 서러운 분들의 사연을 많이 접하게 돼 더욱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했다”며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 준 여고생에서부터 작고 큰 빚을 진 많은 분에 대한 고마움을 시로써 갚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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