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림 속 연인들’…너무 절절해 그림이 된 사랑

  • 입력 2004년 6월 11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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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1907∼1908년 작). 당초 오스트리아 빈의 부호 스토클레의 저택 식당 벽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던 이 그림은 나와 타자, 인물과 배경이 경계를 허물고 한몸으로 섞인 황홀경을 묘사했다.사진제공 예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1907∼1908년 작). 당초 오스트리아 빈의 부호 스토클레의 저택 식당 벽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던 이 그림은 나와 타자, 인물과 배경이 경계를 허물고 한몸으로 섞인 황홀경을 묘사했다.사진제공 예담

◇그림 속 연인들/박정욱 지음/290쪽 1만6500원 예담

입맞춤을 받는 여인은 황홀감에 눈을 감았다. 여인의 뺨에 격하게 몸을 기울인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을 둘러싼 황금빛은 지금의 빛나는 사랑을 정점에서 멈추게 한다.

20세기 회화의 고전이 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을 따라 눈에 익숙한 이 그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왜 여인과 남자의 몸은, 그리고 인물과 배경은 분리되지 않고 섞여 있는 것일까.

어쩌면 클림트가 애써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키스가 아니라 이 경계의 사라짐이 아니었을까. 진실한 키스는 ‘나’라는 정체성의 한계를 넘어 타인을 만나는 관문이자 그 사랑하는 타인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게 되는 마법이라는….

미술사 연구로 박사학위(프랑스 파리 제4대학)를 받은 뒤 프랑스에서 미술평론가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이렇게 ‘사랑’을 키워드로 서양 회화들의 숨은 의미를 읽어낸다. 탐욕스럽고 맹목적이며 외롭고 영원을 꿈꾸는 사랑의 면면들을….

● 탐욕-다비드의 ‘파리스와 헬레나’(1788년)

서양미술사의 전통에서 사랑과 예술이 한 구슬에 꿰인 것은 트로이의 ‘황금사과’ 신화부터였다. 사과에 새겨진 문구, ‘가장 아름다운 자가 나를 소유하리라’란 말은 그리스식 연애정신의 핵심이자 유럽의 화가들이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달려온 근원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이 신의 세계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연애는 아름다움의 추구다. 가장 아름다운 자만이 사랑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 맹목-앵그르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1816년)

‘신곡’에서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 앞에 나타났던 연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던 프란체스카와 형수인 그를 사랑했던 파올로는 사랑을 나누던 침대에서 프란체스카의 남편이 휘두른 칼에 숨진 13세기 말의 실존인물이다.

앵그르가 그린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누느라 눈을 감고 있다. 이들 뒤쪽의 어둠 속에는 칼을 빼든 사내가 있다. 사랑이란 앵그르의 그림에서처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항상 눈을 감는 것. 그 맹목은 스며든 죽음의 전령에 의해서야 비로소 깨어지게 된다.

● 기다림-베르메르의 ‘편지 읽는 여인’(1657년경)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속 여인들은 한쪽 창에서 어렴풋이 들어오는 빛을 향해 서 있다. 그 빛에 기대어 여인들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곁에 없는 연인의 또 다른 실존을 뜻한다.

사랑은 몸담고 있는 현실을 떠나는 꿈을 꾸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오히려 한 발짝도 떼지 못한다. 지금 이곳으로 연인이 찾아오리라는 기다림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여인들 역시 연인을 따라 나서지 못했다. 사랑은 지독한 감옥이다.

● 영원- 페리에 ‘플루톤과 프로세르핀 앞의 오르페우스’

(17세기 초)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지옥으로 찾아갔던 가객(歌客) 오르페우스. 사랑은 죽음 너머에까지 이른다는 신화를 표현한 이 그림에서는 지옥의 신 플루톤도, 머리가 셋 달린 지옥괴물도 모두 온순하게 음악에 빠져 있다.

어디에 있든 사랑하는 자에게는 오르페우스의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철로 된 눈물을 흘렸다는 플루톤처럼 두 눈에는 무거운 눈물이 맺힌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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