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5>정선 구절리

  • 입력 2004년 4월 7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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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의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지만 정선의 산간오지 구절리에는 여전히 시속 50㎞의 객차 한 칸짜리 '꼬마열차'가 느릿느릿 달리고 있다. 사진은 송천 물길 따라 구절리로 가고 있는 정선선 통근열차. 조성하기자
시속 300㎞의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지만 정선의 산간오지 구절리에는 여전히 시속 50㎞의 객차 한 칸짜리 '꼬마열차'가 느릿느릿 달리고 있다. 사진은 송천 물길 따라 구절리로 가고 있는 정선선 통근열차. 조성하기자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 아리랑 가락타고 옛날로 가는 꼬마열차. 객차 한 칸 달랑, 내 몸 하나 달랑…》

세상이야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정선선 꼬마열차가 그렇다.

객차 한 칸 달랑 붙이고 정선 산골짝의 증산과 구절리 두 역을 잇는 길지 않은 단선 철로(45.9km)를 하루 세 번 오가는 이 열차. 탄광경기 좋아 구절리가 사람들로 북적일 때만 해도 황금노선 열차였지만 폐광되어 조용한 산골마을로 되돌아온 후에는 적자 노선으로 전락해 천덕꾸러기며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 산골짝 계곡따라 46㎞ 하루 세번 왕복

그렇지만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불어닥친 답사여행 붐을 타고 ‘꼬마열차’가 사람들 눈에 다시 띈 후에는 이 열차를 찾는 이도 늘고 있으니 더 이상 구박할 일도 아닌 듯하다. 정선 아라리 가락이 태어난 아우라지(송천과 골지천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뜻)를 객차 한 칸 달랑 달고 건너다니는 진귀한 열차를 타보기 위함이다.

2000년 11월 가을바람 스산하던 어느 날. 전국의 허다한 철도 노선 중 유일하게 이 정선선을 운행하던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철처럼 마주보고 앉는 초록빛 융단의 좌석이 설치된 낡은 객차. 한겨울이면 한가운데 시커먼 석탄난로를 피워 난방을 할 만큼 허름했다.

장날이면 손자 용돈벌이로 산나물이며 무말랭이를 보자기에 고이 싸 아름아름 들고 정선 장에 내다 팔러 나가던 깊은 주름살의 그 할머니, 하교길이면 기차에 올라 의자에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구석에 모여앉아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떠들며 정겨운 소음 만들던 그 아이들….

그날 마지막으로 구절리역 떠나 증산역으로 향하던 낡고 허름한 비둘기호 객차에서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매정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 열차, 이 풍경 다시는 볼 수 없으려니 하면서.

그 후 3년 여. 이번에는 고속철도 바람이 엉뚱하게도 퇴역한 비둘기호 대신 이 철로의 주인이 된 통일호 열차마저 역사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4월 1일 고속철도 개통과 통일호 열차 퇴역이 ‘동시상영’된 것이다. ‘슬로 푸드(Slow food)’다 ‘슬로 라이프(Slow life)’다 해서 요즘 세상은 느림의 철학을 중시하는 데 교통수단만큼은 그 반대다. 느린 놈은 죄다 강제 퇴출시키고 재빠른 날쌘돌이만 대접해 준다.

○ 정선 장날 맞춰가면 다양한 볼거리

그러나 걱정 마시라. 정선선의 이 통일호 열차는 ‘속속익선(速速益善)’의 고속철도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재하니까. 그렇다고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호’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대신 ‘통근열차’라는 어쭙잖은 명칭으로 바뀌었다. 기본요금도 100원 인상(1100원→1200원)됐다. 또 오전 2시15분 증산역을 출발해 정선역까지만 왕복하던 새벽열차의 운행이 중단됐다. 그러나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오가는 기존 열차는 종전과 변함없이 하루 6회(3왕복) 운행 중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선선 꼬마열차가 언제까지 용평리조트에서 흘러내리는 송천과 태백의 한강발원지에서 내려오는 골지천과 합쳐 조양강을 이루는 아우라지 물 건너 정선의 숨겨진 속살을 헤치며 구절리역까지 오갈지는 알 수 없다. 정선군이 추진 중인 ‘레일바이크’(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그 추진력으로 철로를 달리도록 고안한 것으로 구간은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 사이) 운행이 허가되면 통근열차 운행구간 역시 증산역과 아우라지역 사이로만 국한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빠르면 올 가을일 수도 있고.

그러니 정선선 꼬마열차 아직 타보지 못하신 분, 아우라지강 건너 개울가를 느릿느릿 달리는 한 칸 열차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사라진 뒤 후회하지 말고 서둘러 타 볼 일이다. 요즘은 ‘카페열차’로 개조돼 창밖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정선장날(날짜의 끝자리가 ‘2’와 ‘7’인 날)을 기억했다가 시골장도 보고 꼬마열차도 타보자.

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정선선 철도

△총연장=45.9km △이용방법=청량리↔강릉 열차 이용시 태백선(제천↔백산)의 증산역에서 내려 갈아탄다. △노선=증산(기점)∼별어곡(6.4km)∼선평(13.7km)∼정선(22.6km)∼나전(32.6km)∼아우라지(38.7km)∼구절리(45.9km). 증산역 정선역은 보통 역, 별어곡역 선평역은 간이역(역무원 1명), 나머지는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 △문의 ①증산역=033-591-1069 ②철도고객센터=1544-7788

정선선 통근열차 운행 시각표
증산역정선역구절리역정선역증산역
출발 도착출발도착출발도착출발도착
06:4507:1807:2307:5408:2008:5308:5409:25
14:0014:3314:3415:0515:4016:1416:1516:50
18:0018:3318:3419:0519:2519:5719:5820:29
증산↔구절리 하루 3회 왕복. 1200원(편도)

▽꼬마열차 패키지상품

△정선5일장&아라리 꼬마열차(1박2일)=정선장날 출발. 정선 소금강(광대곡 화암약수)∼여량 옥산장(숙박)∼아우라지 강변산책∼꼬마열차 여행(아우라지∼별어곡)∼동강(연포마을)∼영월 청령포∼서강 선돌∼열차 귀경. 14만5000원.

△촛대바위 해돋이&꼬마열차(무박2일)=매주 토요일 출발. 동해 추암해변(해맞이)∼두타산 무릉계곡∼메주와 첼리스트(정선 된장마을)∼아우라지 강변∼꼬마열차 여행∼열차귀경. 6만5000원. 승우여행사 www.swtour.co.kr,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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