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극단을 넘어 소통의 중심으로

  • 입력 2004년 3월 3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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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오늘로 창간 84주년을 맞았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기치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보다 앞으로 열어가야 할 미래의 무게가 몇 배나 무겁게 느껴진다. 이 시대의 언론과 나라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어렵고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흔히 인식과 준거(準據)의 틀이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의 사고와 행태를 규율해 온 주된 가치와 규범들이 변화의 급류 속에서 도전받고 있다. 이념은 남루해졌고, 권위는 자칫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헌정의 근간인 대의(代議)민주주의조차 난무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밀리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듯하고 정제되지 못한 언어가 우리의 의식을 비틀고 마비시킨다.

그렇다고 변화를 외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세계화와 정보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아날로그 시대의 불합리와 불투명, 비효율은 더 이상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해도 이를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 또한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시대의 변화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바꾸는 역할에 더욱 충실하려고 한다. 한층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와 비판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인도하고 걸러주며, 변화가 국민 개개인의 발전과 행복에 연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동아일보가 3·1정신의 구현을 다짐하며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사시(社是)로 내걸고 출발한 것 자체가 곧 변화이고 혁신이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변화를 가장한 천박하고 음험한 시류다. 변화의 외양을 띠지만 무책임하고 극단적인 정치적, 사회적 선동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적(敵)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분단과 전쟁, 근대화와 민주화의 험난한 여정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가치이다. 어떤 이유로도 훼손돼선 안 된다. 국가의 발전전략도 개인의 삶도 결국 그 기초 위에서 논의되고 짜여야 한다. 법치(法治)는 이를 지탱하는 보루다. 의견의 다양성,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나 법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법치가 무너지면 그 사회도 무너진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는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세상을 개혁과 반(反)개혁으로 나누고 이쪽은 양심적 진보, 저쪽은 부패한 수구로 낙인찍고 있다. 이분법적 편 가르기 속에서 법은 어느 한 쪽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로까지 인식되는 대단히 위험한 경향마저 생겨나고 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남과 내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생각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적대시해서는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이미 낡은 것이다. 사안에 따라 개인별로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은 과연 보수인가 진보인가. 부질없는 구분이다. 오직 국가 이익과 공동선이라는 기준이 있을 뿐이다.

동아일보는 어떤 극단도 배격할 것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정론의 가치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다원화된 민주사회의 첫걸음이다. 극우도 극좌도 국민 통합과 나라 발전에 짐이 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4·15 총선은 참으로 중요하다. 구태(舊態)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굴절 없는 민의(民意)의 표출을 통해서 대의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시 세워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국회에 대해 국민의 70%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국회의 구성원인 의원들을 뽑아준 사람은 누구인가. 국민이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이성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된 인물을 뽑아야 한다. 뽑아놓고 후회하고, 그래서 다시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는 공정하고 깨끗한 총선이 될 수 있도록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궁극적으로 소통(疏通)의 책무를 지닌다. 말과 생각이 막힌 곳 없이 흐르게 함으로써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도 결국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변화와 혼돈의 시대, 동아일보는 소통의 중심에 굳건히 설 것이다. 시시비비 불편부당의 정신으로 들을 말은 듣고 할 말은 함으로써 갈등과 분열을 넘어 모두가 하나 되는 자랑스러운 공동체 건설에 앞장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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