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외국인 서울 서바이벌/인터내셔널 하우스 탐방

  • 입력 2004년 1월 29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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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외국인을 위한 카페인 종로의 '서울셀렉션'에서 한국영화DVD를 고르는 미국인 린과 론 시에슬락 부부.⑤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강남구 청담동 미용실 '토니 앤드 가이'에 컬러링을 받으러 온 미국인 조앤 맥키버 ⑥'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다국적,다문화 커뮤니티를 일궈내는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④외국인을 위한 카페인 종로의 '서울셀렉션'에서 한국영화DVD를 고르는 미국인 린과 론 시에슬락 부부.
⑤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강남구 청담동 미용실 '토니 앤드 가이'에 컬러링을 받으러 온 미국인 조앤 맥키버
⑥'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다국적,다문화 커뮤니티를 일궈내는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춘라이지에 하오지오부지엔(춘래 언니, 오랜만이에요).” “비엔베니도스 무초 구스토(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반춘래(35)·후안 기라오(38·스페인) 부부가 현관에 들어서자 각국 인사말이 이들을 반긴다. 90여평 남짓한 빌라에 한국, 미국, 러시아, 인도, 중국, 베트남인이 뒤섞여 있는 모습은 국제공항 대합실을 연상시킨다.

해외여행 안내책자 '론니 플래닛-서울'2004년판

17일 이들이 찾은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인터내셔널 하우스(IH).’ 이곳은 원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국 언어를 가르치는 외국인들, 그들에게 외국어를 배우러 오는 한국인들, 배낭여행객, 비즈니스맨, 어학연수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외국인 허브’로 거듭났다.》

두 달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미스 대만’ 출신 반씨는 여기서 중국어를, 기라오씨는 스페인어를 가르친다. 이날은 ‘인터내셔널 커플’ 모임에 참석하러 왔다.

장주오민(27·여·중국)은 반씨를 보자마자 손을 붙잡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장씨는 중국 어학연수를 갔던 한국인 이성호씨(26)를 만나 한국에 시집온 지 1년이 채 안됐다. 여기서 만난 반씨는 친정식구나 다름없다.

한국어 공부 2주째인 남이리나(32·여·카자흐스탄)도 ‘한국 시집살이’란 공감대 덕에 금방 장씨와 친해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서 물리학 교수를 지냈던 남씨는 “한국인과 결혼해 재작년 퇴직하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한국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면서 “마땅히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는 내게 IH는 정보의 보고”라고 말했다.

○ 60여명 강사 자원봉사

오후 3시. 방과 부엌 거실 등 집안 곳곳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이 시작됐다.

한국어 방에서 갑자기 영어로 일장연설이 흘러나왔다. 수업을 맡은 고교 국어교사 정윤경씨(24)가 한복을 차려입고 온 것이 발단. 정씨가 ‘신분에 따라 달랐던 과거의 한복’을 설명하자 인도인 조조 나타니엘(47)이 인도의 계급제도에 대한 ‘특강’을 자청하고 나섰다. 정씨는 “당황스럽긴 해도 이런 점이 오히려 이곳의 매력”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거실 한 쪽에서는 외국어 노래 수업이 한창이다. 오늘 곡목은 ‘Quizas, quizas’. 원래 스페인 대중음악이지만 ‘What if(영어)’ ‘也許(중국어)’ ‘어쩌면(한국어)’ 등 각국 언어로 바꿔 부르며 노랫말의 뜻을 배운다.

이곳에선 13개 언어, 강좌 48개가 진행 중. 한국어 강사 18명을 포함한 60여명의 강사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이 중 20여명은 한국어를 배우러 왔던 외국인들이다.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 자국 언어를 가르치면 수강료가 무료라서 ‘언어 물물교환소’라고도 불린다.

수강 과목수와 무관하게 수강료는 월 6만원. 지난달 대학로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뒤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 인터넷카페 ‘월드빌(http://cafe.daum.net/worldvill)’ 회원을 포함한 학생은 2700여명. 매주 이곳을 직접 찾는 이는 한국인, 외국인을 합쳐 200여명에 이른다.

○ 한국의 체크 포인트, IH

스코틀랜드인 카트리나 멜빈은 세계적인 해외여행 안내책자 ‘론리 플래닛-서울’ 2004년판을 보고 이곳을 찾아왔다. 외국인 여행객들의 입소문이 번지자 ‘론리 플래닛’은 올해 처음으로 IH를 소개하면서 ‘저렴하게 한국어를 배우고 유용한 정보도 얻는 곳’이라고 적었다.

한 해 이곳을 거쳐 가는 외국인은 수백명.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가정집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신사동 빌라 부엌은 비정규 과정인 ‘키친 클래스’가 진행되는 수업현장이자 각국 민속음식을 직접 만드는 ‘푸드 코트’다. 최조식 사무국장(37)은 “함께 요리를 하며 친분을 쌓고 각국 식문화를 익힐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또 IH는 대학로에도 30평형 빌라를 얻어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임시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하루 이용료는 1만원. 문병환 대표(42)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시설 유지비 정도만 나오면 족하다”고 한다. 작년 말엔 러시아 지역 대학생 30여명이 며칠간 묵고 갔다. 비좁고 소박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생들에겐 호텔이나 다름없다.

사실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영어열풍에 휩싸인 한국에서 학원 강사를 해도 될텐데 굳이 급여도 없는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다. 한국생활 3년째인 캐나다인 하이디 코왈스키(29·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로 선택한 건 이해관계를 떠나 나 자신을 열고 친구도 사귀고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다. 여기선 그런 게 가능하다. 일반 학원에선 느낄 수 없는 ‘집 밖의 가족’ 같은 친근감이 내겐 무척 소중하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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