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독<1>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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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황주리
그림 황주리
아귀는 입술 끝에 독이 있다. 시장 남자가 한 말이다. 건성으로 지나가듯 내뱉은 말인데도 그 말을 들었을 때 목덜미가 서늘했다. 고작 팔뚝만 한 생선에게 주둥이도 아니고 입도 아니고 ‘입술’ 이라는 단어를 붙여서일까. ‘독’ 이라는 말 때문일까. 입술 끝에 있다는 독, 달콤하게 느껴진다. 얼음조각 위에 아귀가 몸을 뒤집고 누워 있다. 아귀의 뱃살이 통자루처럼 크고 납작하다. 남자는 꼬챙이로 아귀의 흰 배를 콕 찌른다. 아귀의 몸이 뒤집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시커멓고 우둘투둘한 등판, 두꺼운 턱뼈 위로 사정없이 벌어진 입, 그 속을 가득 메운 뾰족한 이빨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 좋은 놈입니다, 맛도 영양도 그만이죠. 남자는 꼬챙이에 꽂힌 아귀를 내 앞으로 바짝 내민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선다. 남자는 다시 얼음조각 위에 아귀를 내려놓는다. 남자의 무릎 근처에서 휘둘리는 꼬챙이가 쉭쉭, 소리를 내지른다. 대천산이라 맛이 특별하다느니 이건 커서 이만원은 넘게 받아야 되는데 싸게 해주겠다느니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등을 돌린다. 빠른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물기가 튄다. 비린내가 튀어 오른다. 여러 개의 수족관과 어패류들을 지나친다. 검은 앞치마와 장화를 신은 가게 주인들이 내 옷깃을 붙잡는다. 그들이 가리키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매콤한 아귀찜 먹고 싶다. 그의 목소리만 발밑에 감겨든다. 갈수록 수북해지는 그의 재떨이가 떠오른다. 뒤돌아선다. 지갑을 꺼내어 몇 장 안 되는 지폐를 헤집어본다.

아귀는 여전히 흉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멀찌감치 서서 손가락으로 아귀를 가리킨다. 잘라 줄까요, 그냥 줄까요, 남자가 묻는다. 나는 준비한 지폐를 건네면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건성으로 대꾸한다. 그냥 주세요, 대충. 남자는 아귀의 시커먼 등판을 쿡 찔러 비닐봉지에 넣는다. 밥주걱 같은 지느러미가 검은 봉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자에게서 건네받은 비닐봉지를 몸에서 멀찍이 떨어뜨린 채 손에 들고 수산시장을 빠져나온다. 후두둑, 빗방울 하나가 손등에 떨어진다. 습기를 먹은 바람이 짧은 머리카락을 휘젓는다. 금세라도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질 것 같다. 걸음이 빨라진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온다. 이사 오고 나서 긴장을 하면 연거푸 설사를 하는, 신경성 장염이 생겼다. 심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비닐봉지를 와락 움켜쥔다. 저릿한 통증이 손가락 끝에서 온몸으로 번져간다. 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피다. 손가락 몇 군데에 핏방울이 맺힌다. 이슬처럼 맺힌 핏방울을 빨아댄다. 나란히 찔린 세 손가락을 집어넣느라 입을 옆으로 넓적하게 벌린다. 아귀처럼. 맥박이 빨라진다. 어서 집에 가고 싶다. 시커먼 등판과 야성의 입에 번뜩이는 칼날을 긋고 싶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주택가이고 다른 한쪽은 아파트단지다. 낡은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느라 어수선하다. 단지 앞에 대형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여자 모델이 다리를 길게 벌리고 있는 광고 사진이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새 건물과 도로, 쇼핑몰의 풍경이 들어가 있다.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즐비했던 상가는 대부분 부동산 가게다. 가게 유리창마다 아파트 시세를 적은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13평 급매 3억5천, 17평 매매 5억3천, 15평 전세 5천 등등. 액수가 가리키는 수치를 헤아려본다. 밤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들이 떠올라 픽 웃어버린다. 엊그제까지 있던 치킨집도 식당도 반찬 가게도 없어졌다. 아직 남아 있는 미장원과 과일 가게와 중국집은 어딘지 스산하다. 슈퍼마켓 출입문에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가게에서 일할 아주머니를 구합니다. 망설이지 않고 가방에 손을 넣어 팬을 찾는다. 전단지 돌리는 일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하다. 집 근처 가게라 다니기도 수월하다. 가방 속에서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펜이 없다. 전화번호를 몇 번씩 반복해도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다. 펜 대신 매끄럽고 뭉툭한 것이 손에 잡힌다. 립스틱이다. 손등에 두 개의 숫자를 적다가 멈춘다. 아무래도 좁다. 스웨터와 티셔츠를 걷어붙인다. 팔꿈치 안쪽에서부터 손목까지 여덟개의 번호를 길게 적는다. 35793816. 마지막 숫자가 적힌 퍼런 맥박 위에 커다란 빗방울이 투둑, 떨어진다.

주택가를 향해 길을 건넌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공터를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을 걸어간다. 49호라고 적힌 큰 대문을 지나 쪽문으로 향한다. 볼 때마다 닫아도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쪽문은 항상 열려 있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먹다 남은 짬뽕그릇에 코를 박고 있다. 인기척에도 도망가지 않는다. 아귀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쪽문을 통과하고 비뚤비뚤한 일곱개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길고 좁은 통로가 이어진다. 통로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활짝 열린 첫 번째 문 안쪽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두 번째 문을 지나칠 때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푸르스름한 소주병들이 일렬횡대로 주욱 서 있다. 사십대 남자가 혼자 사는 집이다. 닫혀 있는 문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세 번째 문 앞에 선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고 지그시 돌린다. 이 문의 열쇠는 아무렇게나 찔러 넣으면 잠기지도 열리지도 않는다. 힘으로 하면 더 안 된다. 너무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열쇠와 열쇠 구멍이 서로 꽉 맞물리는 절묘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고역이었다. 문 한번 잠그려면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한참을 매달려야 했다. 지금은 능숙해져서, 너무 쉽고 빠르고 아무렇지 않게 열쇠 구멍을 채울 줄 안다. 열쇠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찰크락. 정교한 열쇠 구멍이 쇳덩이 하나를 완전하게 삼키는 소리다. 돌처럼 가만히 엎드린 채 물고기를 날름 삼키는 아귀의 커다란 입이 뇌리를 스친다. 오로지 그 하나의 짝이 아니면 결코 열어주지 않을, 정교한 움직임이 아니면 쉽게 풀어주지 않을 완벽한 어우러짐의 소리를 확인하자 손잡이를 비튼다. 문이 열린다. 계단은 집 안에도 있다. 세 칸의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바닥이다. 턱없이 높은 화장실과 바닥 사이에도 큼직한 벽돌이 쌓여 있다. 우리 집은 밖이나 안이나 순 계단 투성이야, 딸아이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비좁은 부엌과 어질러진 방과 현관 옆에 붙은 옹색한 화장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치워도 금방 어수선해지는 방안이 거미줄 같다. 축하해요오오, 축하해요오오, 첫 번째 집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신발을 벗고 싱크대 위에 비닐봉지를 올려놓는다. 평소에도 눅눅한 방안은 비가 오자 더욱 습하다. 부패하고 비릿한 시멘트 냄새가 벽을 타고 오른다. 꿉꿉한 장판을 걷어 본다. 물기가 있다. 춥지 않아도 난방스위치를 올린다. 몇 종류의 구인신문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매콤하고 쫄깃한 아귀찜 먹고 속이나 확 뚫렸으면, 남편의 메마른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돈 많은 사장 운전사로 들어가든 전쟁터로 가든 하루라도 빨리 이 놈의 택시를 때려치워야지, 원…. 중얼거리며 밤새도록 신문을 뒤적거렸다. 주간지 밑에 깔린 지도와 서류 몇 장이 눈에 들어온다. 판교 신도시 지도와 이민설명회에 관한 광고지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오디오 리모컨을 집어 든다. 침대며 소파, 화장대, 장식장 등의 대부분의 가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오디오다. 오단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는 오디오를 향해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오디오 속에는 아직 갈아 끼우지 않은 석장의 CD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 유행했던 노래를 모아 만든 컴필레이션 음반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시장 남자의 설명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요리는커녕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고 하자 남자는 전문 요리사처럼 아귀찜 만드는 법을 조목조목 일러주었다. 아귀찜을 만들려면 일단 미더덕이며 콩나물, 미나리 등이 필요하죠. 그 다음에는 양념이 문젭니다. 고춧가루와 찹쌀가루, 간장, 다진 마늘이며 파, 생강에 깨와 후춧가루와 참기름을 섞어 매콤하고 기가 막힌 양념을 만들어야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되살아나고 머릿속에는 어설픈 요리방이 펼쳐진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귀는 입술 끝과 내장에 독성이 있죠. 이걸 가위로 잘라내는 겁니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위가 들려 있다. 두 조각의 가윗날이 아귀를 향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서 아귀의 입과 내장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슬걱슬걱. 다 잘랐으면 아귀의 커다란 입에 물을 붓는 겁니다. 입으로 들어간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뱃속을 훑어 내려와 잘린 내장으로 빠져나오면 쭈그려 있던 몸이 편평해지죠, 그 다음에는 도마 위에 놓고 본격적으로 자르기 시작합니다. 착실한 조수처럼 나는 그의 지시에 따른다. 위와 아가미를 떼어낸다. 가슴지느러미를 잘라낸다. 꼬리지느러미도 댕강 잘라버린다. 턱밑부터 껍질을 벗긴다. 본격적으로 아귀의 몸통을 토막 내기 시작한다. 탱크 같은 머리를 자른다. 넓적한 배를 삼등분한다. 뼈도 버리지 않는다고 남자는 말했다. 살 속에 숨은 뼈와 가시를 베어내려면 손에 힘을 가득 실어야 한다. 마치 사람의 굵은 손가락을 자르듯이. 눈을 뜬다. 깔깔대고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기껏 팔뚝 만한 물고기 한 마리에게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니. 아직까지도 이런 분노가 남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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