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1973년 일기 공개 “詩는 늘 불만과 만족 사이에 있다”

  • 입력 2003년 12월 5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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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손소희 부부, 이문구, 이청준들과 문예지 창간 의논했다. 사무실을 (종로구) 청진동 민음사 바로 위층인 5층으로 계약했다. 잡지 이름을 이것저것 말했다. 내가 ‘한국문학’이라고 해버렸다. 그대로 결정했다.” (1973년 4월 13일)

시인 고은씨(70·사진)가 자신의 일기를 공개했다. 최근 출간된 계간 ‘문학과 경계’ 겨울호에 1973년 4월 6일∼7월 6일 일기를 실었다. 고씨는 “70년대에 썼던 일기를 우선 연재해 볼 생각”이라며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돌이켜보고 싶었다”고 게재 이유를 밝혔다.

고씨의 일기에는 소설가 최인훈을 비롯한 문단 지인들과의 교류, 문학에 대한 생각, 시인의 소소한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 개인의 기록이자 시대상의 소묘다.

“4·19 13주. 혁명으로는 13주년이고 그때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13주기다. 1960년 4월 19일. 나는 해인사 승려였다. 나에게 4·19 콤플렉스가 있다. 혁명의 현장이란 방관자에게도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4월 19일)

“청진동이 새로 한국 문예부흥의 거리가 되어간다. 신구문화사와, 막 발돋움하는 민음사와 이번에는 ‘한국문학’ 준비사무소까지 있다. 한국문학 사무실에서 이형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물론 이문구가 방을 늘 지키고 있다.” (4월 21일)

시인은 지인들과 매일같이 통음(痛飮)하고 시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시는 늘 불만과 만족 사이에 있다.”(4월 22일), “내 시는 무엇인가. 시의 행복은 현실의 불행인가.”(4월 24일) “시인에게는 박애가 불가능하다. 진짜 시인은 범신론자여야 한다. 유일신주의는 시를 죽인다. 단테는 기적이다.”(5월 30일)

시인이 이 공개일기에 붙인 ‘불나비의 기록’이라는 제목은 1959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인쇄소 화재로 소실된 자신의 시집 ‘불나비’의 제목에서 따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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