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방송계 '털복숭이 목소리 뜬다'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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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복숭이 여자' 같다던 여성의 허스키 목소리가 방송에서 연일 흘러나오고 있다.

MBC 주말드라마 '회전목마' 여주인공인 탤런트 수애, KBS '뮤직뱅크' 등 3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가수 박정아, SBS '최수종 쇼' 보조 진행을 맡은 가수 황보 등이 그 주인공이다.

수애는 2월 MBC '러브레터' 이후 계속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맡고 있다. 역시 허스키 목소리를 가진 이태란이 주로 활달하고 보이시한 역할을 소화하는 것과 다르다. '회전목마'의 유재혁 PD는 "수애의 목소리는 애써 꾸미지 않는 솔직함이 느껴져서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수애도 "나 스스로 내 목소리가 싫다면 어떻게 연기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정아는 댄스그룹 '쥬얼리'의 리더이나 "내 목소리는 거칠고 후련한 록 음악에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3집 수록곡 '비 마이 러브'에서 허스키하고 강한 보컬을 들려줬고,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미국 얼터니티브 록 밴드 '포 넌 블런즈'의 히트곡 '워츠 업(What's Up)'을 부르기도 했다.

역시 두터운 음성을 가진 황보는 댄스그룹 '샤크라'의 리드보컬로, 목소리는 예뻐도 정작 노래는 못하는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 구별된다. 힘 있는 목소리대로 '가요계의 터프 걸'로 통하는 그는 자기 생각을 바로 말하는 털털한 성격으로 호응을 얻는다.

이들의 목소리는 예전 기준대로라면 '방송 부적합'이다. 방송이 선호해 왔던 대표적 목소리로는 방송인 김세원씨(현 EBS 이사장)와, TV 방송 영화에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더빙을 도맡았던 성우 장유진씨가 꼽힌다.

88년 데뷔한 최진실도 처음에 목소리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90년대초 CF에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선언할 때도 목소리는 성우 권희덕씨의 것이었다. 최진실이 스타가 되고 나서야 '꾀꼬리에 못 미치는' 목소리로도 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목소리 개성시대'의 본격 시작을 알린 사건은 개그우먼 박경림의 성공이었다. 그는 TV뿐 아니라 KBS 2라디오 '박수홍·박경림의 FM 인기가요'(2001년)에서도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제 그 범위가 개그우먼뿐 아니라 주연급 탤런트나 프로그램의 얼굴인 MC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예쁜 외모와 '미운' 목소리의 불균형이 프로그램에 재미를 더한다는 것.

한편 음성공학자인 숭실대 배명진 교수(정보통신전자공학부)는 "여자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에는 여성들의 키가 커진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여성의 허스키 보이스는 여전히 목소리만으로 호감을 주기 힘들다고 방송관계자들은 말한다. 목소리가 예쁘지 않은 여자 연예인들은 대개 '목소리 때문에'가 아니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고 봐야 하는 것.

장태연 MBC TV제작2국장은 "이 연예인들은 재치와 인간미로 목소리의 약점을 보완하며 자기 개성으로 만들고 있다"며 "단 낮은 목소리 때문에 발음이 불분명하게 들릴 수 있는 점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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