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는) 모양이 원래 그렇지, 뭐.”
스님은 또렷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비록 가부좌를 온전히 틀지는 못했지만 허리만큼은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있었다.
원담 스님은 최근 법문집 ‘덕숭산 법향’을 펴냈다. 그의 상좌(上座)인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이 20여년간 녹취한 원담 스님의 법어를 3년여에 걸쳐 정리한 것. 원담 스님은 큰스님 중에서도 ‘활구법문(活句法文·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생생한 경험으로 들려주는 법문)’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법문집을 보시니 감회가 어떠신가요.
“내 말 적어놓은 건데 별다른 감회가 있겠어. 무덤덤해.”
원담 스님은 빙그레 웃고 만다. 이 웃음에 ‘천진불’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입니다. 중생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신다면….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하면 돼. 별다른 게 없어.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돼.”
너무 평범한 말씀에 선뜻 다음 말이 나가지 않는다. 만공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다른 스님이 그 경지를 묻자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잔다’고 답했다.
―중생들이 잘못 알아들을 수 있으니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그냥 가꾸면 돼. 특별한 법을 많이 알면 못써. 자기가 가진 법대로 밀고 나가. 오줌 누고 밥 먹고 잔소리하고 하품하고…그러면 돼.”
우문(愚問)에 선답(禪答)일까. 뭔가 특별한 답을 원하는 기자에게 스님은 자꾸만 평범한 말을 하며 기대를 저버린다.
―평생 화두 참선을 해오셨는데 선 또는 화두란 무엇입니까.
“재작년인가 미국 하버드대 종교학과 교수가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교수 귀를 잡아당긴 뒤 주먹으로 이마를 한대 쳤지.”
화두 얘기를 하자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난다. 어리둥절한 기자에게 스님의 시자(侍者)인 법보(法甫) 스님이 설명해준다.
“화두는 의심이 절실해야 생기는 겁니다. 그 교수는 ‘내가 명색이 종교학자인데 선을 가르쳐 달랬더니 왜 내 이마를 때렸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을 겁니다. 그게 화두입니다.”
아직 미심쩍은 표정을 읽었음일까. 스님은 갑자기 “할(喝)”을 외친다.
스님은 아홉 살 때 이모를 따라 절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스님이 됐다. 만공 스님은 어린 나이에도 총명하고 선기(禪氣)가 짙은 원담 스님을 무척 귀여워했다고 한다. 만공 스님은 어린 스님의 머리를 주장자(주杖子)로 때리며 “지금 네가 ‘아야’하고 소리치게 만든 그 놈을 데려와라”고 주문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던 중 원담 스님이 “그 놈이 마음인 것 같다”고 하자 만공 스님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물질에 매달려 사는데요.
“물질을 너무 탐하면 못써. 하지만 너무 피하는 것도 욕심이야. 다 자기 소용에 따라 쓰면 돼.”
스님을 만난 날은 마침 정대 스님이 입적한 날. 그 소식을 스님에게 알렸다.
“그 사람, 잘 갔네그려.”
그리곤 삶과 죽음을 관조하듯 게송 한 수를 읊었다.
“타타무념무일사(PP無念無一事)하고 행행처처무이사(行行處處無二事)로다(헤아리고 또 헤아려도 아무 일 없고, 행하고 또 행해도 아무 일 없도다).”
예산=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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