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학원 이사장 정대스님 입적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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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正大) 스님이 18일 오전 5시 안양 삼성산 삼막사 월암당에서 열반했다. 세수 67세. 법랍 42세.

영결식은 22일 오전 10시 스님의 출가본사인 수원 용주사에서 열린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193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영문과를 졸업한 스님은 25세이던 1962년 완주 위봉사에서 출가해 이듬해 인천 용화사에서 당대 최고 선지식인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용주사에 주석하면서 은사인 전강스님으로부터 받은 `판치생모'(板齒生毛·판대기 이빨에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라는 뜻)의 화두를 붙들고 용맹정진해 `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 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따로 없다'는 견성(見性)을 이루었다.

스님은 종단의 주요 요직을 두루 맡았다.

1974년 총무원 사회부장을 맡은 이후 1987년까지 사회부장과 총무부장 2차례, 재무부장 4차례 등을 맡았다. 또 종단의 국회의원 격인 종회의원을 7차례 역임했고 종회부의장, 종회의장 등도 거쳤다.

스님은 무엇보다 1999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아 1994년과 1998년 두차례에 걸친 분규로 분열됐던 종단을 안정시킨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총무원장 선거 당시 입후보마감 직전에 후보로 등록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스님은 종단 내 계파를 두루 아우르며 화합이 이뤄냈다.

그는 또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있던 중앙승가대를 경기 김포시로 이전하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에 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종단의 굵직한 현안을 해결했다. 또 총무원장을 맡을 당시 수천만원에 불과했던 종단 재정을 수십억대로 살찌우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다. 스님은 2001년초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그 사람이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는지 여부를 놓고 파문을 일으켰다.

스님은 임기를 10개월여 앞둔 올해 2월 종단 안정을 위해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나 동국학원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동국대 일산병원 정상화에 노력했다.

스님은 효심이 깊어 출가 후에도 지근거리에서 어머니를 모셨으며 지난해 어머니의 유산 40억원으로 '은정장학재단'을 만들어 소년소녀가장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디지털뉴스팀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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