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도청논란 확산]“비화기는 왜 개발했나”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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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도청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불가능한 일”로 못박았던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 등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도청이 복제단말기만으로 간단히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는 ‘도청 불가론’으로 일관해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해명=정통부는 휴대전화 도청 문제가 불거지자 공식브리핑을 통해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실험은 했지만 복제단말기로 통화내용이나 단문메시지(SMS) 등을 엿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24일도 “복제 휴대전화는 기술적으로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공식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유필계 전파방송관리국장은 “들리긴 들리는데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험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도청은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복제단말기 사용은 휴대전화 도청으로 볼 수 없다?=정통부는 복제단말기를 사용해 통화내용을 엿듣는 행위는 일반적인 휴대전화 도청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제단말기 자체가 불법이므로 이를 활용한 도청을 일반적인 도·감청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

이와 관련해 정통부는 “단말기 복제는 제조공정을 알지 못하면 거의 불가능하다”며 복제단말기 활용은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나 시중에서 3만원 정도면 복제단말기를 제작할 수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정통부의 이 같은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비화(秘話·도청방지) 단말기 개발은 왜 했나=정통부가 도청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그동안 비화 단말기 개발을 진행해왔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23일 국감에서 “정통부와 국정원 등 정부기관들이 1995년 국정원 산하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 휴대전화 비화기술 개발을 의뢰해 CDMA 도청방지 기술이 개발됐다”고 주장했다. 정통부는 이에 대해 “도청방지 기술을 개발 중인 것은 사실이나 아직 상용화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로 다른 실험결과 해석=KBS ‘추적60분’팀은 “자체 실험에서 복제단말기로 통화내용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도청대상 단말기 근처에서 복제단말기를 사용하면 벨이 동시에 울리고, 도청대상자와 도청자가 함께 ‘통화’ 버튼을 누르면 통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는 설명. KBS측은 이때 단말기 두 대 중 하나라도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통화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어느 한쪽 단말기의 전원을 끈 경우에는 다른 단말기도 통화가 불가능했다고 자세히 밝혔다. 하지만 똑같은 실험을 진행한 정통부는 “벨소리는 울리지만 도청은 불가능했다”고 밝혀 실험 결과를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술(IT) 제품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류가 발견되면 당당히 밝히고 바로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나성엽기자 cpu@donga.com

▼휴대전화 복제 어떻게▼

“잘 들리지도 않는다. 또 복제도 힘들다.”

정보통신부는 24일까지도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으나 복제 휴대전화로 도청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가 도청을 하려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휴대전화를 복제할 수 있을까?

전자상가 등지에서는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연결한 뒤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고유번호(ESN)를 추출, 새 단말기에 이를 삽입해 20∼30분 만에 휴대전화를 복제해 준다. 값은 3만원선.

정통부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본인의 휴대전화를 몰래 복제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휴대전화 복제에 필요한 ESN은 이동통신 사업자나 휴대전화 제조업체도 보관하고 있어 이론적으로 원본 없이 복제가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정설. 한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공식 요청할 경우 가입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며 “공개 가능한 정보에는 ESN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복제가 성행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본인의 휴대전화 없이도 복제 및 도청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KBS “도청 가능하다”▼

휴대전화 도청 논란과 관련해 ‘복제단말기를 써도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뒤집는 증언이 나왔다.

KBS ‘추적60분’ 팀은 “8월 복제한 휴대전화기를 이용한 도청 실험을 자체적으로 벌여 반경 20m 이내에서 도청 대상자의 음성을 100% 또렷하게 듣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추적60분팀은 ‘죽음을 부르는 스토킹’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휴대전화 도청 피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으며, 복제단말기로 음성과 단문메시지(SMS) 음성메시지 등을 도청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추적60분팀 윤태호 PD는 “정보통신부측도 이를 알고 이동통신사들에 차단 프로그램 설치를 지시하겠다고 알려왔다”며 “이에 따라 서울 내 상당 지역 기지국에서는 도청이 불가능해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정통부 유필계 전파방송관리국장은 “정통부는 9월 9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복제전화를 이용한 도청 실험을 했고, 사업자들에 10월 4일까지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다”고 24일 밝혔다.

추적60분팀은 또 “8월 30일 실험결과가 방영되자 국회의원들의 자료요청이 잇따랐으며 당시 자료를 입수한 의원들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신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암호화하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시스템은 그동안 도청이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한편 이와 관련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박진(朴振) 의원은 23일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복제전화를 이용하면 휴대전화도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통부는 24일 “복제단말기에 의한 휴대전화 도청은 벨소리만 같이 울릴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할 수도 있다”고 밝혀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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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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