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저 사람 무우당 같다'…신들린 듯한 배우들

  • 입력 2003년 5월 13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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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에 연극을 담은 작품 ‘저 사람 무우당 같다’는 무대와 객석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진제공 문화아이콘
연극 안에 연극을 담은 작품 ‘저 사람 무우당 같다’는 무대와 객석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진제공 문화아이콘

한 사내가 배를 타고 호수 위에 떠 있다.

그는 기억의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수몰된 호수 밑의 옛 집으로 돌아가 기억 속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어머니, 형, 형수, 그리고 사랑했던 처녀와 마을 사람들.

사내는 이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든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사내는 직접 이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 기억을 조립해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은 이 사내지만, 피조물들은 그의 기억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피조물 나름의 삶을 가진다. 피조물들은 연극 속에서 이 사내의 기억이 놓쳐버린 부분들을 메워가고, 때로는 그 기억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이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연극을 바라보며 스스로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나간다. 무대에 펼쳐진 작품은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연출가의 의도만 옳고 관객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미국 철학자 넬슨 굿맨 식으로 말하면 “극작 겸 연출가인 김학선의 세계에서 틀린 구성이 관객 A의 세계에서는 옳은 것일 수 있다.” 예술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끝없이 상승하는 이해 속에서 이뤄지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은 기억 속에 산재해 있던 ‘원혼’을 깨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무우당 같다.” 부제목 'SHOW-MAN SHA-MAN'은 ‘배우가 곧 무당’이라는 뜻.

연극 속에 연극을 담은, 혹은 연극 위에 연극을 얹은 이 작품은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극작과 연출을 겸한 김학선의 답은 이렇다. “연극은 어른들의 소꿉장난이다. 기억을 가지고 하는….”

물론 그의 답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의 연극은 이미 무대에 던져져 관객과 만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극작으로 보나 연출로 보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는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 희미한 파스텔톤의 천에 옷의 형상을 그려 넣은 원혼의 의상, 수몰지구의 호수 밑바닥을 형상화한 무대도 돋보인다.

하지만 ‘연극’의 본질에 대해 화두를 던지려 한다면 다음에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릴 때는 희곡이 극작가의 손을 떠나 다른 연출가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기대해 볼 만하다.

25일까지. 화수목 오후 7시반, 금토 공휴일 오후 4시반 7시반, 일 4시반. 연우소극장. 02-762-081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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