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5월 준공 앞둔 건축거장 마리오 보타 설계 '교보타워'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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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와 사평로가 만나는 사거리(일명 제일생명 사거리)에 최근 ‘교보타워’라는 이름의 새 건물이 들어섰다. 이 건물은 스위스 루가노(이탈리아어권) 출신의 건축가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등을 지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 해서 화제가 돼왔다.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해 1999년 완공된 ‘종로타워’ (옛 화신백화점 자리 국세청 건물)이후 국내에서는 모처럼 만나는 세계적 외국 건축가의 작품이다. 》

교보타워가 주는 첫인상은 ‘단단함’이다. 그 ‘단단함’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유리 외벽 고층건물이 주는 ‘가벼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현대건축의 한 특징은 가벼움이다. 유리 같은 가벼운 소재가 사용되고 동시에 비대칭적으로 구성되므로 건축물은 더욱 가벼워졌다. 좌우대칭을 기조로 한 구조에 벽돌재질은 확실히 단단한 느낌을 준다.

# 25층 ‘쌍둥이 빌딩’ 높이100m 넘어

건물의 로비. 보타는 비즈니스 센터보다 콘서트장의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 김동주 zoo@donga.com

그러나 그저 단단하다고 부르는 것만으로 그 인상을 잘 전달했다고 할 수 없다.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씨가 대학로에 지은 문예진흥원 문예회관, 샘터사옥 등의 벽돌 건물도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교보타워처럼 위압적이지는 않다. 벽돌은 본래 저층건물에 주로 사용되는 소재다. 높이 100m가 넘는 25층 건물에 벽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다. 보타는 루가노라는 스위스 칸톤(canton)의 전통적인 석재와 벽돌을 선호하는 건축가이지만 이처럼 높은 건물에 벽돌소재를 사용한 것은 그 자신도 처음이다.

교보타워는 위압적으로 단단할 뿐만 아니라 폐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거대한 요새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건 강남대로쪽을 향한 정면에 창이 거의 나있지 않다는 데서 온다. 건물을 보는 사람들은 정면이 아니라 마치 뒷면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지금은 그래도 눈꼽만큼 작은 창문이 각 층에 하나씩 나있지만 보타의 원설계도에는 이것마저 없었다. 교보생명측 설계자문위원으로 일한 건축가 김종성씨는 ‘도시를 외면했다’는 말로 보타의 설계도를 본 첫 느낌을 표현했다.

한국인은 보통 주변과의 부드러운(soft) 조화를 중시한다. 풍경속에 건축이 녹아들어가기를 원한다. 이런 심리로는 유럽식의 단단한(hard) 조화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김씨는 “건물을 보는 데 반드시 동조(同調)의 시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보타처럼 주변과 강하게 대립함으로써 특유의 스타일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용호 전 교보생명 회장은 유리건물을 싫어하고 ‘단단한’ 건축을 좋아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광화문의 교보사옥도 그가 세계적 건축가 시저 펠리에게 의뢰해 설계한 것이다. 그 건물 역시 단단한 건축물이다.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펠리의 다른 작품을 그대로 국내에 옮겨왔다 해서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완공(80년)된지 23년이 지났는데도 철지난 느낌을 주지 않는 묘한 건물이다.

신전회장은 강남 교보타워의 벽돌색깔을 직접 골랐다. 보타는 붉은색 벽돌을 선호한다.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파리 에브리성당도 붉은 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교보타워에 사용된 붉은 벽돌의 색은 약간 다르다. 신전회장은 이 색을 ‘곰삭은’ 붉은 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주변과 조화 거부한 ‘단단함’

건물에서 벽돌색을 벗어난 유일한 것은 앞뒤 출입구쪽의 육중한 원형 기둥들로 검은 색과 흰색 석조가 번갈아가며 아름다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출입구의 기둥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교보생명 건축팀장 경지선 상무는 “신 전회장이 왜 기둥만 색깔이 다르냐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며“보타는 기둥과 벽돌의 색이 충돌해 건물 전체의 색깔을 풍부하게 만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말했다.

충돌과 대비의 원리는 단단함만으로 풀수 없는 이 건물의 비밀을 알려준다.

교보타워는 두개의 쌍둥이 타워로 이뤄져 있다. 타워 사이는 비어있고 투명한 유리 브릿지로 연결된다. 보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솔리드(solid)속에 들어있는 보이드(void)’다. 이런 엄청난 빈공간이 없었다면 이 건물은 육중하기만 한 흉측스런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빈공간을 상정하지 않고 100m높이의 벽돌건물을 지으려 했다면 그건 ‘미친’ 생각이다.

투명한 유리공간은 벽돌 외벽이 가리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햇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다. 노승범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물 밖에서 건물 안을 바라보는 폐쇄적인 느낌과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의 개방적인 느낌이 드라마틱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설계자 마리오 보타 인터뷰▼

“서울이 교보타워를 원했다(Seoul wants it).”

마리오 보타(60·사진)가 준공을 앞두고 있는 교보타워를 둘러보러 23일 방한했다.

“서울은 회색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것도 거의 고층건물이다. 특히 교보타워 근처는 강남대로와 사평로라는 2개의 도로가 교차하고 있는 지점이다. 이런 곳이야말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힘있는(strong) 건물이 필요하다.”

-건축가 김종성씨는 당신 설계도에서 창들이 강남대로쪽이 아니라 사평로쪽으로만 난 것을 보고 혹시 사평로를 정면으로 보고 설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는데 과연 정면은 어디인가.

“물론 강남대로쪽이다.”

-어떻게 창이 하나도 없는 정면을 구상할 수 있나.

“이 건물은 두개의 벽돌 타워가 안쪽 유리 브릿지를 보호하고 있는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마치 인간의 단단한 육체가 그 속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과 같다. 도시와 연결되는 창의 역할은 바로 그 유리 브릿지가 수행한다. 이 심장으로 도시의 에너지가 들어와 건물 사방을 채워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최근 대표작을 꼽는다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에브리 성당, 이탈리아 로베레테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교보타워도 대표작이 될 만하다.”

-건물내 미술품들을 직접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로비에 설치된 홍승혜씨 작품이 특히 마음에 든다. 그림속의 상형문자와 같은 상징들은 원시적(archaic)이면서도 현대적(modern)이다. 홍씨는 흰색과 검은 색만으로 아주 강력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보타는 이탈리아 베니스건축대학에서 카를로 스카르파로부터 직접 건축을 배웠으며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등의 조수로 일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건축양식은 모더니즘과 원시적인 것의 결합이 특징이다. 삼성그룹이 한남동에 짓는 고(古)미술관의 설계도 맡았다. 5월 30일 준공식에 참석하기위해 다시 방한할 예정이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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