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2003 공안검사]공안검사, 정치검사

  • 입력 2003년 4월 11일 10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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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A변호사를 먼저 만났다.

―대학 시절 대자보에서 A변호사의 이름을 많이 봤다. 머리에 뿔 달린 무시무시한 사람일줄 알았다.

“공안검사 시절 피의자 가족들도 그런 말을 했다. 직접 만나보니 미남이라면서….”

―공안부 폐지론이 나오는 요즘 심경이 어떤가.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착잡하다. 정통성 없는 정권 유지를 위해 반체제 사범들을 양산한 면이 있다.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체제와 정부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힘들다. 평검사로 일할 당시 공안부장에게 사건을 들고 가면 부장은 항상 이렇게 물었다. ‘그 사건이 반체제적이냐 반정부적이냐.’ 나는 ‘반체제적이면서도 반정부적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것이 공안업무다.”

―공안검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가.

“정치가 법 위에 있다. 옛날에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이 ‘구속은 몇 명 정도 한다’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검찰이 6 대 4 정도로 책임져야 한다.”

공안검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때문에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선거 때마다 ‘북풍(北風)’이 불어 여당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선거 18일 전에 발생했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앞서 강 장관과의 악연에서 소개된 이상형 검사다. 이 검사는 89년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을 맡아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보법상 불고지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0년 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검찰은 이 사건 재조사에 착수, 공안 검사가 공안 검사를 수사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검사는 자신이 김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시간과 같은 15시간 동안 후배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검사는 피의자를 잘 만나야 된다”는 말을 남기고 한직을 전전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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