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교수 변신 박문석 문화부차관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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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한기자
전영한기자
“퇴직한 뒤 산하 단체장으로는 절대 안 가겠다고 선후배들에게 호언장담해왔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지요.”

2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면서 곧바로 이달부터 중앙대 예술대학원 정교수로 강단에 서게된 박문석(朴文錫·56·사진) 문화관광부 차관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웃음에는 고위공직자들에게 은퇴 후 보너스 트랙처럼 마련된 인생은 살지 않겠다는 자신감과 겸임이니 명예니 따라붙기 마련인 ‘계급장’을 다 떼버리고 정식 교수로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에 대한 만족감이 겹쳐 있었다.

“지난해 연말 중앙대에 제가 먼저 말을 꺼냈죠. 공직생활의 현장 경험과 이론을 접목시켜 학문적으로 정립해보고 싶다고요. 단, 시간강사라면 사절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흔쾌히 수락해주더군요.”

그는 당장 3일부터 ‘문화정책’ ‘인터넷과 저작권법’ ‘예술행정학’ 등 세 과목의 강의를 맡는다. 차관에서 바로 교수로의 변신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듯했다.

“대학강단에 선지는 벌써 10여년 됐어요. 1990년 문화부가 발족한 뒤 초대 저작권과장을 맡은 경험을 살려 동국대 법대에서 시간강사로 5년여간 강의를 했습니다. 중앙대에서도 이미 5년여 전부터 계속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아왔고요.”

문화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 종무실장 등 문화부의 다양한 일들을 맡아오면서 10년간 강단생활을 병행했다는 것은 분명 남다른 자기관리의 결과이리라.

그는 사무관 시절부터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던 특허법 분야를 독학했다. 당시 문화행정관료로서는 엉뚱해 보이던 이런 준비는 90년대 들어 지적재산권 분야가 떠오르면서 비로소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 문화부에서 국장급으로 해외연수를 나가 정식 학위를 획득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94년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유명한 미국 프랭클린 피어스 로스쿨에서 1년 만에 석사학위를 획득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짧은 영어실력으로 진짜 미국법정에 서서 법정공방까지 벌여가며 24학점을 이수하자니 힘겨웠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자책도 많이 했지요.”

2000년 등단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써온 작품 중에서 35편만을 가려 ‘무우전(無憂殿)’이란 시집까지 낼 정도로 문학적 열정도 뜨겁다. 공직과 학문, 문학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올드 패션이 안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1주일에 2권씩 책을 읽어요. 또 시간이 없어 매 학기 토요일 딱 한 과목씩 강의를 들으면서도 벌써 5학기째 고려대 행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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