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人들이 빈소에서 털어놓은 ‘인간 이문구'

  • 입력 2003년 2월 2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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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여행길에서 시인 김지하와 함께 한 이문구씨(오른쪽). -사진제공 실천문학사
1984년 여행길에서 시인 김지하와 함께 한 이문구씨(오른쪽). -사진제공 실천문학사
문단의 ‘화합’을 염원했던 고 이문구씨는 떠난 뒤에도 소망의 ‘선물’을 한아름 풀어놓았다.

“그 양반은 워낙 발이 넓어서 아는 사람도 많아. 초창기에는 진보 진영에 몸담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갈수록 품이 넓어지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저렇게 나눠진 문학판을 아우르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런 진국 같은 사람이었어.”(소설가 최일남)

25일 타계한 소설가 이문구씨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는 26일 밤 12시가 넘어서도 선후배 문인들과 지인, 제자 등의 발길이 잦아들 기색이 없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인의 인품과 문학,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새 대통령 취임식날 저녁에 세상을 떠나시다니 이 선생은 진정한 반골(反骨)이 틀림없어.(웃음) 반골이 뭐야. 무엇에든 저항하는 기개잖아.”(시인 김정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 선생께 문학상 상금으로 5000만원이 생긴 게 얼마나 잘 된 일이야.”(소설가 심상대)

“릴케의 시 중에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는 구절이 있어. 이 선생 유언이 바로 이 말씀 아니겠어.”(시인 이시영)

여러 문인들이 모인 가운데 이장호 장선우 이창동씨 등 영화감독이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고인은 한진영화사 계열의 출판사에 근무할 때 영화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장선우 감독은 84년 겨울, 이문구 김지하 송기원씨와 함께한 여행을 떠올렸다. 이 여행은 ‘김지하의 사상기행’으로 묶여 출간됐다.

“이 선생님과 김지하 선생님, 두 분이 아주 대조적이셨어요.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라고 할까. 계룡산 부여 남원 등지를 다니는 여행길에서 이 선생님의 넉넉함이 너무 좋았어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분이시잖아요.”

한쪽에서 왁자하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선생이 한때 영화배우 김지미씨를 좋아했거든. 모임 자리에 안 가려고 하시다가도 ‘아, 거기 김지미 나오니까 갑시다’ 하고 눙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일어나시곤 했다고.”

한편 정부는 27일 오후 고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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