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한 핏줄 이어진 내 산하를 간다

  • 입력 2003년 2월 17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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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삼일포에 선 이근배 시인.
금강산 삼일포에 선 이근배 시인.
빗장 잠근 하늘이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땅이었다.

내 나라 역사를 철조망으로 가르고

내 겨레 가슴에 담장을 쌓은

반세기 기나긴 통곡의 해와 달이었다.

산과 산이 서로 등을 돌리고

물과 물이 돌아서 흐르던

휴전선 155마일에 허리 잘린 금수강산이었다.

남의 나라 땅 밟아서 백두산 오르고

바닷길 멀리 외둘러 금강산 가면서

산길 물길은 왜 터지지 않는 거냐고

주먹으로 가슴 치며 바라보던 분계선을

이제사 넘는구나. 그날이 오늘이구나.

서기 2003년 2월 14일 오후 1시 3분

동해안 등뼈 타고 다다른 금강통문

남쪽 한계선을 넘어 녹슨 철조망 거둬내고

묻힌 지뢰 뽑아내어 새로 닦은 길

비무장지대를 건너간다.

하늘과 땅이, 산과 물이 서로 얼싸 안고

비로소 이어지는 핏줄

한 몸 되는 입맞춤을 하는구나

나도 이 흙냄새 물씬 맡으며

땅에 엎드려 입맞춤 하고 싶구나

세계와 함께 겨레와 함께

내가 지금 넘고 있는 이 길은

길이 아니다. 평화이다. 자유이다.

역사이다. 겨레이다. 사랑이다.

울음이다. 웃음이다.

이 길 하나가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흘림이 있었으며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형과 아우의 찢긴 아픔 또 얼마였겠느냐?

이제사 오느냐, 반갑구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흰 옷 갈아입은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가

앞다투어 손을 내미는구나.

나무들은 눈밭에 발을 묻고

기쁨 울음을 터뜨리고

바위 틈도 어흥어흥 소리를 지르며 내닫는다.

이 발길 어찌 금강산에서 멈추랴

잠든 철마를 깨워 경의선 타고

압록강을 넘어 대륙으로 달리리라

묘향산도 백두산도 내 나라 땅을 질러가리라

이제 우리는 분단의 장벽을 거두었다

겨누었던 총부리도 내려놓았다.

세계여! 이 평화 이 자유를 향해

그대들도 총부리를 겨누지 말아라.

총을 들었던 손에 삽과 괭이를 들고

에헤야디야 얼싸절싸 잘 살자고 일어서는 우리

7천만 한솥밥을 이제야 먹는구나

통일은 이렇게 오는구나.

우리는 이 길로 통일 대보름을 맞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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