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속뜻은 무엇인고…1200여 사부대중 금강경 토론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41분


코멘트
‘금강경을 통해 조계종의 오늘과 내일을 본다’는 주제아래 열린 실상사의 간경 결제는 마지막날까지 100명이 넘는 스님과 불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남원=서정보기자
‘금강경을 통해 조계종의 오늘과 내일을 본다’는 주제아래 열린 실상사의 간경 결제는 마지막날까지 100명이 넘는 스님과 불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남원=서정보기자
어느덧 경내의 매화나무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오른 전북 남원시 실상사.

겨울의 끝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던 8일 오후 6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와 함께 30여명의 스님과 80여명의 불자들이 금강경을 품고 하나둘씩 화림원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실상사 화림원은 이번 동안거(冬安居·겨울철 수행) 동안 전통적인 참선 수행 대신 조계종의 근본 경전인 금강경을 읽고 토론하는 간경(看經) 결제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23일 시작된 금강경 결제는 그동안 9번에 걸쳐 12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은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는 날.

이번 금강경 결제는 논주(論主)인 각묵 스님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을 번역한 ‘금강경역해’를 교재로 삼았다. 1700여년 동안 구마라즙의 한문번역에 의존하다보니 부처님의 근본 뜻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또 스님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일반인까지 결제에 참가한 열린 논강을 했다는 점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마지막 날이지만 이날도 참여자간에 치열한 논전이 벌어졌다. 각묵 스님이 “이 세계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무아·無我)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생멸(연기·緣起)한다는 부처님의 사상에 따라 모든 상(相)을 버리는 것이 금강경의 핵심인데 한국 선방에선 ‘진여(眞如)’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등과 같이 절대적인 그 무엇인가를 설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 동화사의 강주(講主)인 해월 스님은 “조계종에서 말하는 ‘진여’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며 금강경의 핵심은 ‘상(相)의 척파(斥破)’를 넘어선 ‘반야바라밀’의 실천”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 같은 논쟁은 초기 불교의 논리를 강조하는 시각과 한국 불교의 역사적 전통을 강조하는 시각의 대립을 보여준 것.

화림원감인 재연 스님이 “‘상의 척파’와 ‘반야바라밀’은 사실 같은 것을 다른 면에서 바라본 것”이라고 말하자 철오 스님은 “가장 명확하게 분별해야 할 것을 똑같은 것이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은 “금강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토론이 방향성을 잃거나 금강경을 통해 현 조계종의 문제를 진단하는 데까지 논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하지만 지나치게 선 위주로 흐르는 결제 방식에서 벗어나 대중이 모여 함께 지혜를 쌓았다는 것이 성과”라고 말했다.

논강에 참여했던 사부대중은 가슴속에 ‘상의 척파’와 ‘반야바라밀의 실천’이라는 화두를 안고 달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따라 지리산 냇물을 가로지르는 해탈교를 건너 총총히 흩어졌다.

남원=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