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학생이 담벽 위에 걸터앉아 빌딩 숲을 바라보는 뒷 모습을 포착한 이 사진은 여학생의 작고 여린 어깨선과 고층건물의 강하고 날카로운 선이 대비돼 묘한 애조를 자아낸다. 문득, 사진 속 소녀와 하나가 돼 상하이를 바라보게 된다. 첨단과 기계로 무장한 저 빌딩숲을 위해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해 11월22일 개막, 올 1월20일에 폐막한 ‘2002 상하이 비엔날레’ 주제는 ‘도시창조(Urban Creation)’. 지금까지 열린 비엔날레 제목은 ‘열린공간(Open Space)’,‘탐험(Exploration)’, ‘상하이 정신(Shanghai spirit)’ 처럼 다소 추상적이었다. 네 번째 비엔날레인 이번 행사가 전 세계 동일 화두인 ‘도시’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개방화 국제화를 향한 중국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전시 역시 그에 걸맞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낡은 건물을 미술관으로 바꾼 구시가지의 상하이 미술관을 20일 찾았다. 이날은 폐막 날이었는데도 현지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 외국인들로 붐볐다. 이번 전시에는 20개국에서 모두 68명의 작가가 4개 층 전시장에 100여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피사의 사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에펠탑 등 각국 도시의 상징물들을 축소한 건축 작품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어 2002년11월15일 현재 중국의 다양한 일상을 찍은 사진들이 이어진다. 하루에 몇 쌍이 결혼하는 지, 몇 명이 죽는 지, 태어나는 지등을 수치와 함께 곁들여 찍은 100여장의 사진들에서는 비록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세계인들간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또 그동안 과거와 현재,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유화를 제작해 온 리우 다홍(劉大鴻)은 36개의 원을 각각 반씩 나눠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의 일상을 그린 ‘Mosaic of Mores In New Shanghai’를 선보여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머지 작품들 대다수는 도시인들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표현한 것들이 많았다. 고대 학자를 마네킹으로 만들어 도심의 거리나 대극장, 야외공원에 세워둔 뒤 사진을 찍은 미요 시안 춘(繆曉春)은 “마네킹을 바로 내 모습으로 생각해 변화와 개발을 상징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늘 소외된 자로서 느끼는 이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작가인 정연두는 슬라이드 작품을 통해 똑같은 평수에 비슷비슷한 인테리어를 한 아파트 거실을 무대로 여러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도시라는 공간에서 복제되는 우리의 삶을 표현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은 무엇보다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
쟝 메이(江梅) 큐레이터는 “회화를 넘어서 사진작업은 물론, 건축적 요소를 대거 끌어 들었다”며 “지난 20여년간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발의 상징을 표현하는데 건축적 요소만큼 설득적인 이미지는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공공 미술관에서 열리는 정부 주도하의 공인 미술전 답게 마치 해외 투자가들을 겨냥한 홍보전인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관계’와 ‘휴머니즘’이 사라진 전시였다는 비판도 있었다.비엔날레를 둘러 본 큐레이터 김유연씨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상하이의 역동적인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 한 의도가 짙다 보니 개발로 사라지는 인간성의 상실이나 도시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표현한 작품이 적었다”고 평했다.
상하이=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