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요리]불안한 식탁…유전자식품 유해성 논란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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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잠비아는 유엔의 식량원조를 거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전자조작(GM·Genetically Modified)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계최대 유전자조작식품 생산국인 미국은 “차라리 굶겠다”는 아프리카의 ‘무모한 거절’이 유럽 때문이라며 최근 유럽연합(EU)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잠비아가 식량을 거절하는 진짜 이유는 자국민의 건강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잠비아의 최대 교역국이자 유전자조작식품에 부정적인 EU국가들이 잠비아와의 농산물 교역을 중단할까봐 두려워서라는 것.

“미국인들은 매일 먹어도 문제없는 식품을 유럽인, 굶주리는 아프리카인들은 왜 안 먹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거절의 이유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오늘 당장 몸에 이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앞으로 10년 후 혹은 자식, 손자대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유럽인들은 이미 ‘잠복기간 20년’의 광우병을 몸서리치게 체험했다.

● ‘위험사회’의 식탁

‘아무거나 잘 먹기’에서 ‘가려먹기’로 식습관의 패턴이 급격하게 변화되는 이유는 식탁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스웨덴 국립식품청은 감자튀김, 구운 빵 등에서 ‘발암가능물질’인 아크릴아미드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12월 일부 국내시판 감자칩, 감자튀김에 더해 건빵 비스킷 시리얼 초콜릿 등에서도 아크릴아미드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인체 발암보고가 없으므로 기피식품으로 선정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부가설명이 따라붙었다.

8월에는 구운 소금, 죽염 일부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식약청의 발표가 있었다. ‘베트남전에 뿌려진 고엽제’ ‘쓰레기 소각장’ 등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다이옥신이 식탁위 소금, 매일 이를 닦는 치약에도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다이옥신은 체내 ㎏당 42나노그램(ng·1나노그램은 10억분의 1g)만 쌓여도 중추신경계 이상을 가져오는 독성물질이기 때문. 급기야 식약청은 다이옥신이 3피코그램(pg·1피코그램은 1조분의 1g) 이상 검출되는 죽염 등에 대해서는 생산 유통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같은 달 열린 한미통상회의에서는 ‘식탁안전’과 관련해 보다 의미심장하며 포괄적인 영향을 끼칠 협상안이 오갔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유전자조작(GM)식품의 통관절차를 간소화해 생산자가 유전자조작식품이 아니라는 자가확인서를 제출하면 이를 인정해주기로 한 것. “자진신고는 하더라도 한국에서 직접 유전자원료 함유여부를 검사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음에도 시민단체 등은 반발했다. 한국민이 유전자조작식품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주장이었다.

200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1년 7월부터 1년간 수입된 유전자조작식품은 콩 옥수수가 147만4000t, 과자류 430t, 면류 44t, 두부 및 묵류 18t 등이었다. 집이나 식당에서 쓰는 식용유, ‘밭에서 나는 고기’라며 몸 생각해서 먹는 두부조차 유전자조작원료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 안전론 vs 내재된 비극론

유전자조작농산물을 주로 수출하는 미국 캐나다 등의 거대 곡물상들은 ‘조작되지 않은 농산물과 비교해보아 사실상 동등하다’는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을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입장에 선 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은 “유전자는 재생산된다. 세대를 두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미 유전자조작 콩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보고는 빈번하다.

유전자조작식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광우병’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광우병’은 병원균에 의한 전염병과는 달라서 인간에게 결코 전이될 수 없다는 것이 이 병이 소에게서 발견된 이래의 ‘과학적 설명’이었다.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소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설명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뇌가 스펀지처럼 되어 죽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희생됨으로써 무색해졌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이제 한국 사회에 ‘양날의 칼’ 같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식량확보 전략에 따라 86년부터 농촌진흥청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연구해 왔다며 △제초제에 잘 견디는 벼 △혈압상승을 억제하는 토마토 △빈혈치료제를 생산하는 돼지 등을 이르면 4,5년 내에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입이 아닌 국산 유전자조작 쌀을 먹게 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식약청은 2001년 7월부터 ‘유전자재조합식품 표시제’를 시행해 제품 용기나 포장에 유전자조작식품임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그 대상은 콩 된장 고추장 옥수수가루 콩나물 빵 떡 건과류 유아식 등 27개 품목이다.

(참고자료:에릭 슐로서 지음 ‘패스트푸드의 제국’,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박병상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격월간 ‘녹색평론’ 57호·68호)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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