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쓰는 이렇게 키우세요]존중-믿음갖고 대해라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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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부모들이 자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과보호’의 측면이다. 과보호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녀를 나이보다 어리게 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나칠 정도로 보살피는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자녀의 알림장을 일일이 확인하고 심지어 옷까지 입혀주는가 하면 자녀가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봐 매사에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과보호적 부모는 동시에 ‘통제적 부모’에 해당된다. 자녀를 과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자녀의 행동과 생각을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가 무슨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눈에 띄는 못마땅한 부분을 지적하고 부모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주장하며 개입을 시도하곤 한다. 또한 부모의 간섭이나 개입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하는 식의 지시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자녀를 과보호하는 부모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와 자녀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상황을 비디오로 촬영해 본다면 부모의 과보호적 행동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보호적 양육의 내면에는 다분히 권위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부모는 자녀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착각하고, 부모이기에 자녀의 삶을 지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에게도 스스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때로 그들은 자녀의 삶보다는 자녀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양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녀를 존중하는 태도와 자녀에 대한 신뢰가 밑받침되는 양육이다. 이는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자녀의 능력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자세를 기본으로 하여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수용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용이란 결코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용은 자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녀의 능력에 맞지 않는 지나친 기대를 하기보다는 자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이해는 바로 부모가 아닌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부모의 권위를 앞세우는 양육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이와 동시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의 모범적 언행이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부모의 말은 자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는 TV 시청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자녀에게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부모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는 자연스레 책읽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자녀의 행동을 간섭하고 지시하기보다는, 자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부모가 있을 때, 아동은 무엇보다도 자율성을 기르게 되고, 나아가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도 현 심 이화여대교수·소비자인간발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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