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영화평론]조하형/내가 꿈꾸는 건 ‘뭔가를 만드는 것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6시 46분


조하형
▼당선소감▼

감기 몸살로 몸이 결딴나 있는데, 세계 저편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전화 때문에 지금, ‘희한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뭐라고, 쓸 것인가. 머릿속이 반은 녹아버린 것 같은데 뭐라고, 쓸 것인가. 이런 장르의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쓴 글은 사실 니체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출발했고, 거기서 끝났다.

“상처 내부에도 치유력은 있는 법… 다음의 격언은 오랫동안 내 좌우명이었는데, 나는 이 격언의 출처를 식자적 호기심에는 알려주지 않았다: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우상의 황혼’, 서문 중에서)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내 글이 선택될 확률은, 전국에서 나 혼자 투고했을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오직, 뭔가를 간절히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도, 있는 법이므로. 그러고 나서, 뭔가를 썼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심한 감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세계 저편까지 몸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기쁨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했다.

나도, 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에 관해 떠들기는, 쉽다. 정말로 어려운 건,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건, 이거다: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에 관한 것이,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접근하는 것, 극한까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본명 조윤형 △1970년 부산 출생 △1996년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중퇴

▼심사평…화려한 문장력 단번에 시선 당겨▼

응모작은 모두 22편. 그중 무려 9편이 이창동 감독론이나 그의 최신작 ‘오아시스’에 대한 작품론이었다. 그래서 우선 그 9편을 끄집어내 읽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폭력, 순수의 파괴 그리고 카프카적인 변신을 주제로 감독론을 펼치는가 하면 심지어 오아시스 그림의 양탄자가 왜 바닥에 깔리지 않고 벽에 걸려 있는지를 논하는 응모작도 눈에 띄었다. “야, 영화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해석과 이를 글로 풀어내는 표현력이 조화를 이룬 비평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비(非) 이창동 계열의 응모작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다룬 응모작이 각기 3편씩이고 나머지 7편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듯 비주류의 작품세계를 고독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단 다음의 3편에 주목하게 되었다.

정상민씨의 ‘로드무비:불연속적 단층을 찾아가다’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다룬 방혜진씨의 ‘모순을 넘어선 축제의 장’ 그리고 ‘나쁜 남자’를 중심으로 한 조하형씨의 ‘상처는 터지지만 아프지 않다’.

‘로드무비…’는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적인 영화 스타일을 세련되게 해석한 평론이었다. 그러나 ‘로드무비’라는 개별 영화 텍스트 비평과 함께 ‘로드무비’라는 소장르 비평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방혜진씨의 평론은 영화에 대한 따듯한 애정과 차분한 논리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 않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흥행과 연관시키는 작금의 비평 흐름에 비켜 서서 영화를 궁극적으로 작가주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미덕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지나치게 개인 영화감독의 창작물로 해석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에 비해 조하형씨의 응모작은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화려한 문장력이 단번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글이었다.

너무 화려하면 처음에는 쏠리던 마음이 변하기도 쉽다. 그래서 일부러 정을 떼고 며칠을 쉰 뒤 다시 3편을 읽었다. 상처의 모티브를 가지고 김기덕의 영화를 해석한 조하형씨의 평론은 자칫 관념의 논리로 원래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만한 분석과 문장력이 당당한 자신감 속에서 표현된 응모작도 드물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정했다.

강 한 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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