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 官學-士林 모두 포용했다"…학술회의서 제기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25분


김종직 선생을 기리는 후학들의 교육 기관이었던 예림서원. 지방문화재 제 79호로 지정돼 있다. 오른쪽은 김종직 선생.-사진제공 밀양시-
김종직 선생을 기리는 후학들의 교육 기관이었던 예림서원. 지방문화재 제 79호로 지정돼 있다. 오른쪽은 김종직 선생.-사진제공 밀양시-

“밀양(密陽) 선비와 안동(安東) 선비가 만났다. 안동 선비가 밀양 선비를 두고 ‘밀양도 명망있는 학자가 꽤 나왔으니 소(小) 안동 아닌가’라고 짐짓 놀리는 척 말을 꺼내자, 밀양 선비가 ‘작은 안동이 아니라 안동을 두고 웃는다는 소(笑) 안동일세’라고 받았다.”

동국대 사학과 조영록 명예교수가 전하는 ‘밀양 선비’의 이야기다. 밀양 출신 사람이 지어낸 듯 하지만, 이 말에서 퇴계의 고향 안동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밀양의 선비 정신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경남 밀양의 대표적 선비가 바로 점필재 김종직(P畢齋 金宗直·1431∼1492). 밀양에는 김종직의 생가와 묘소, 그를 사숙하던 후학들의 교육기관인 예림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15일 밀양시청 대강당에서는 ‘점필재 김종직의 도학 사상(思想)과 유학 사상(史上)의 위치’라는 주제로 ‘김종직 학술회의’가 열렸다.

밀양 문화원이 주최한 이 행사에는 학계 인사들 뿐 아니라 김종직의 후손인 선산(善山) 김씨 종친회원 등이 참관해 성황을 이뤘다.

김종직은 조선조 사림 전통을 확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조선 전기의 유학자. 영남 사림파를 대표하는 김종직은 조선 성리학에서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의 뒤를 잇고, 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앞에 선 도통(道統)의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이우성 민족문화추진회장, 김충렬 남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최근덕 전 성균관장, 조영록 동국대 명예교수 등 학계 원로들이 참여해 비중을 높였다. 김충렬 원장을 비롯해 이수환(영남대) 김태영(경희대) 정우락(영산대) 박병련(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주제 발표를 했다.

김종직의 생애와 정치 사상, 문학적 성과, 역사 의식 등을 다각도로 재조명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특히 박병련 교수의 견해가 눈길을 끌었다.

박교수는 ‘점필재 김종직의 정치사상과 사림파의 계승 양상’이라는 주제 논문을 발표하면서 “김종직은 부친 김숙자(金叔滋)를 통해 당시 관학(官學)계의 태두였던 변계량(卞季良)을 비롯해 조용(趙庸) 윤상(尹祥) 김말(金末)의 영향도 받았다”며 김종직이 관학과 사림의 맥락을 함께 수용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김종직을 사림의 종장(宗匠)으로만 보던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정교수처럼 사회과학(행정학)을 전공한 학자가 김종직을 고찰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박교수는 “김종직을 길재의 학통만을 이은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명분론적 이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 김충렬 원장은 “조선 유교 도통의 특징은 학문과 문장을 바탕으로 절의가 더해진 것”이라며 “역사 기록이나 시문을 통해 불의를 고발하고 후세를 경계한 김종직은 이런 조선 유교 도통의 관절적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태영 교수는 “김종직은 일반적으로 문학인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성리학에 진작부터 조예가 깊었으며 ‘치심지학(治心之學)’을 갖추고 있었던 학자”라고 평가했다.

한편 행사를 주관한 손기현 밀양문화원장은 “앞으로 2년간 김종직 학술 회의를 2차례 정도 더 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김종직의 학문과 생애를 심도있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주성원기자 s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