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무비카툰 연재 1년 작가 정승혜씨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52분


'무비 카툰'에서 한 컷의 그림과 한마디의 카피로 개봉 영화를 패러디해온 정승혜씨
'무비 카툰'에서 한 컷의 그림과 한마디의 카피로 개봉 영화를 패러디해온 정승혜씨
정승혜가 누구지?

매주 금요일 영화면에 실리는 ‘무비 카툰’ 팬들의 궁금증이다. 지면에 있는 유일한 단서(?)는 여자임을 암시해 주는 ‘암사자(amsajah)’라는 e메일 아이디 뿐.

‘정승혜’라는 이름은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그녀는 지난 10여년간 800편이 넘는 영화 카피 수천개를 만들어 낸 충무로의 ‘카피 머신’이다. 현재 공식 직함은 영화사 씨네월드 이사. 5일로 연재 1년을 맞는 ‘무비카툰’의 주인공 정승혜씨(37)를 만났다.

#‘영원한 마이너리티’의 성공 리포트

‘떡잎’시절, 그녀는 재기발랄한 카피라이터의 가능성을 보였줬다. 그녀가 쓴 ‘최초의 카피’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근검절약 포스터 표어. ‘엄마는 쌀 대신 보리로, 아빠는 커피 대신 보리차로’.

그 떡잎은 지금 카피 문구 한 줄에 400만원을 받는 정상급 카피라이터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국문학을 전공한 적도, 제대로 미술공부를 한 적도 없다. 한 때 “서울대 국문과 나오셨죠?”라는 후배의 말에 홀로 가슴앓이를 했던 그녀가 밝히는 최종 학력은 ‘고졸’. 서울 근교에 있는 한 대학의 가정과에 입학했지만 곧 그만두고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녀가 영화 카피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89년 영화사 ‘신씨네’에 입사하면서부터. 이후 1991년 ‘씨네월드’(당시는 영화광고사)로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대학 간판을 많이 따지죠. 하지만 저는 학교보다 사회에서 배운게 훨씬 많으니 후회없습니다.”

카피라이터로 성공한 후 인터뷰와 강의 요청도 많았지만 한 때는 학벌을 밝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려 거절한 적도 있었다. 스스로 ‘마이너리티’를 자처하는 그녀는 이젠 당당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로 평가받을 뿐 간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스파이더맨''챔피언'(맨 위부터)

# 카피, 카툰, 그리고 코미디

‘그들은 민중의 곰팡이’(투캅스), ‘서울로 발령났다’(간첩 리철진), ‘목숨걸고 버티기, 내공걸고 밀어내기’(달마야 놀자) 등은 영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축약한 성공적 카피로 평가받는 그녀의 대표작들. 외화 ‘못 말리는 람보’의 카피였던 ‘참을 수 없는 람보의 가벼움’은 미국 본사(20세기 폭스)에서도 ‘패러디 영화를 절묘하게 보여준 패러디 카피’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코미디, 특히 섹스 코미디에 강하다.

‘한창 때는 온 몸으로 꿈을 꾼다’(몽정기), ‘모르는 척, 안 가본 척, 처음인 척’(산부인과)이 그 예. 미혼인 그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필화사건도 적지 않았다. ‘믿음 소망 사기 중 으뜸은 사기이니라’(‘할렐루야’)의 카피 때문에 수백통의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고, ‘여자의 비즈니스는 유혹!’(‘폭로’)은 여성단체로부터 욕을 먹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결혼피로연’의 카피였던 ‘여자와는 잘 안되는 남자’는 당시 공륜의 심의에 걸려 ‘여자와는 좀 어려운 남자’로 바뀌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본보에 첫 선을 보인 ‘무비 카툰’에 대해서는 애정이 각별하다. 그녀는 “영화와 카피와 그림이 만나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 컬럼인 만큼 나중에 책으로 묶어내고 싶다”고 했다.

#너 CEO?, 그럼 난 UFO야.

20대 시절 그녀와 동고동락하며 일했던 또래 동료들은 모두 영화사를 차리고 여성 제작자로 변신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필름매니아의 지미향 대표, 좋은 영화사의 김미희 대표,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가 그들. 그러나 그녀는 늘 농담처럼 말한다. “난 CEO(최고경영자)가 아니라 UFO(미확인 비행물체)다”.

실제로 그녀는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여기저기 ‘출몰’해 사람들을 만난다. “카피의 30%는 내 노력이지만 70%는 상대방과의 대화속에 답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낙천적인 그녀는 스스로를 ‘오늘주의자’라고 부른다.“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덧 실력이 쌓인다”는 것. 인터넷에서 ‘정승혜의 온라인 카피 교실’을 열고 싶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20자 평을 부탁했다. 10초도 안돼 돌아온 답변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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