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나대로선생']세상 비추는 언론속의 거울

  • 입력 2002년 9월 16일 17시 55분


서정우
‘나대로 선생’이 역사 속에 등장한지도 어언 22년. 7000회를 거듭하면서 민초들의 대변자로서 혹은 그들의 친구로서 함께, 울고 웃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나는 언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대로선생’의 7000회 그 자체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대로 만화는 탄생부터 그 속에 고통을 잉태하면서 태어났다. ‘나대로선생’이 태어난 1980년 11월은 신군부가 등장하고, 광주학살사건이 발생하고,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치규제자명단이 발표되는 등 공포와 억압의 분위기가 전국에 소용돌이쳤던 시기였다.

이홍우 화백은 이러한 상황과 검열에 맞서 일곱 번을 수정하면서 첫 번째 작품인 “명단에서 빠진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를 의미 있는 제목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 전통은 그후계속해서 나대로만화의 중심 기조가 되었다. ‘나대로선생’은 역사 속에서 비굴하게 권위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시류에 쉽게 휘말리지도 않았다.

‘나대로선생’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고 하나의 언론이며 작품이다. 80년대 사회가 극도의 정보빈혈증을 앓고 있을 때 ‘나대로선생’은 예민한 문제에 대하여 공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백성을 울리고 웃게 한 훌륭한 언론이었다. ‘나대로선생’은 간단한 경구 하나로 사건의 급소를 찔러 백성을 감동시키는 유머와 해학, 풍자와 은유가 살아 숨쉬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마치 시가 저널리즘보다도 강력한 것과 같이 ‘나대로선생’은 백마디의 말이나 글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움직인 언론 속의 빛나는 거울이었다.

80년대가 가고 90년대가 오면서 ‘나대로선생’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 정치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방향으로 관심의 폭을 다원화하고 다양화했다. 특히 ‘나대로선생’은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일반 대중의 일상 생활들을 흥미롭고 유익하게 그리도록 노력했다.

21세기는 ‘나대로선생’에게 정보화, 국제화, 개방화, 영상화, 디지털화, 감성화, 개성화, 문화화의 새로운 도전들을 안겨주리라 전망된다. ‘나대로선생’은 성공적으로 응전하리라 기대하며, 나는 이홍우 화백을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대기자 혹은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서정우(연세대 특임교수·신문방송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