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함정임씨 70장내외 ‘작은소설’ 11편 담아 소설집 내

  • 입력 2002년 7월 24일 18시 45분


새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민음사)를 펴낸 소설가 함정임씨(38)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고혹적인’ 목소리. 대뜸 냉면을 먹자고 한다.

다음날, 냉면집.

“이 냉면집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면발을 품평하신대요. ‘오늘은 80% 만족스럽다’ 이런 식으로요. 우리에겐 매번 똑같지만, 할아버지에게는 같은 면이란 없는거죠.”

냉면을 먹다, 흘리듯 얘기하는 그를 본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냉면 가락 속에 날마다 다른 ‘내재적 진실’이 숨어있는 것처럼, 함정임의 소설 속 사람들도 그렇다. 언뜻 봐선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조용하다. 맞서지도 대항하지도 소리지르지도 않는다. 그들의, 싸한, 외로움이 작가와 닮았다.

그는 찻집보다 강가에서 캔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한여름낮, 반짝이길 멈추지 않는 강. 그는 차 트렁크에서 은색 돗자리와 햇볕을 가리기 위한 우산을 꺼냈다.

‘버스, 지나가다’에는 같은 제목의 표제작을 비롯해 ‘조용한 날들의 계단’‘치사(致死)’ ‘그의 즐겨찾기’ ‘꽃구경’ ‘휴일’ ‘그녀는 노래 부른다’ 등 원고지 70장 내외의 ‘작은’ 소설들이 11편 담겨있다. 이 소설들을 관류하는 유사한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처연함일거예요. ‘감정불능’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잔인한 상태가 어딨겠어요? 꾹 눌렀는데도, 서서히 반쯤만 올라오는 그런 상태의 인물들이죠. ‘치사’의 주인공 봉수…. 그를 생각하면 참 아리지 않아요? 돌아오지 않는 미스 유를 기다리는 것은 그에게 살아가는 방편이자 죽어가는 과정이예요. 속울음을 울지요.”

그도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 김소진을 기다린걸까. 괜한 생각일까.

“‘버스, 지나가다’ ‘사랑처럼’ ‘사랑인가’ 이 작품들에서 사랑을 통해 ‘사람’을 묻고 싶었어요. 사실 이 자체가 모두 역설이죠. 외로운 사람들을 말을 못해요. ‘… 노래부른다’에서 주인공 한이가 노래를 부르기까지는 ‘처연’을 넘어야 했지요.”

“철저히 어긋나면서도 가까운 것이 흥미로워요. 죽음과 삶도 순간적으로 비껴가는 것이 아닌가요? ‘버스, 지나가다’는 ‘비껴가기’의 극치예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비슷하지 않아요? 인물들을 비껴가게 하면서 난 뒤에서 씨익 웃죠.”

베네치아를 꿈꾸는 ‘나’(사랑인가),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애인의 얘기를 늘 믿어주는 척하는 ‘미호’(꽃구경), ‘사랑처럼’의 영신과 재인도 그저 비스듬히 서서 수동적으로 운명을 맞는다.

한강공원에서 여의도까지 그의 차에 동승했다. 그는 오디오 볼륨을 33까지 높였다. 그룹 ‘롤러코스터’의 노래다. 독특한 음색과 가사가 그와 어울린다. 그도 따라 부른다.

“분명한 것은 몰랐던 것은 끝이 있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알고 있어도 또 시작될거라는 것/ … 어느새 넌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 내 어깨를 부딪치며 가는데/ 분명한 것은 몰랐던 것은 끝이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잊지말것은 먼저 떠나라는 것”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