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기와 자기의식' 출간 이만갑 서울대 명예교수

  • 입력 2002년 6월 17일 18시 32분


사진=김형찬기자
사진=김형찬기자
한국 사회학계의 제1세대인 이만갑(李萬甲·81)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저서 ‘자기와 자기의식’(소화)을 출간했다. 1996년 ‘의식에 대한 사회학자의 도전’(1996)을 내놓은 후 6년만의 새 저서다. 1986년 정년퇴임 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자택을 찾아갔다. 이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궤적을 보여줄 수 있는 주요 논문과 저서부터 탁자에 ‘좌-악’ 펼쳐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학자가 왜 의식을 탐구하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에 대한 저의 문제의식은 1967년 4월 미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에서 근대화의 사회학적 함의’에서 제기한 가설에서 시작된 거예요.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열망을 가지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지배계급 바로 밑의 층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이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이야기하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정작 기자가 궁금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제 공부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세요?

“사실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좀 힘들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머리 쓰는 것만큼 재미난 일이 없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동안은 계속 연구할 거예요. 계획한 것을 다 하지는 못해도 생각만이라도 제시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의식’의 문제를 탐구하시기 위해 심리학, 생물학, 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이용하시던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시는 게 어렵지 않으신지요.

“우리는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어요. 특히 근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지요. 4·19 직후 민주당 정권때 장준하씨의 권유를 받아 국토개발계획에 잠시 참여한 적도 있어요. 혁명할 때는 시시각각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순간순간 자기를 의식해야 해요. 그것은 바로 자기 의식의 문제지요. 이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부터 생물학, 화학, 물리학, 뇌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물어보면서 공부했어요.”

-공부는 주로 언제 하시나요.

“저녁 8시쯤 자고 밤 10∼12시에 일어나서 2시간 정도 라디오 들으며 화투패도 떼어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요.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적기도 하구요. 그러다가 졸리면 다시 1∼2시간 자고 새벽 4∼5시에 일어나 운동삼아 산보를 하고, 6시쯤에 천천히 아침을 먹고는 다시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뉴스를 듣고 바둑도 보고 공부를 시작하지요.”

결국, 휴식과 공부를 반복하며 건강을 조절하면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한다는 얘기였다.

-월드컵도 보시나요?

“보지요. 스포츠는 전국민을 들끓게 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이 가장 빨리 일치하는 것이 스포츠지요. 그러나 스포츠에서 너무 영웅 만드는 데만 돈을 쏟아 부으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게 돼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광기’도 있어야지요.”

이 교수는 처음에 연락했을 때는 인터뷰를 꺼려했으나 인터뷰를 마치고 떠날 때는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면서 부인과 함께 따뜻하게 배웅을 해줬다.

김형찬 기자 khc@donga.com

▼이만갑교수의 학문세계

사회학자로서 5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한국사회학의 발달을 이끌어 온 저자는 “사회의 변혁을 주도하는 사회세력은 지배계급의 바로 밑에 있는 주변집단”이라는 사회학적 가설을 검증하려는 학문적 관심을 가져 왔다.

저자는 이 같은 주변집단이 지닌 사회변혁적 에너지의 근거를 밝히기 위해 ‘의식’과 ‘자기’라는 두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해 왔고, 그와 같은 연구의 결실을 ‘의식에 대한 사회학자의 도전’(1996)과 ‘자기와 자기의식’(2002)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 정립에 자극을 주었던 페스팅거의 ‘사회비교 이론’에서 이미 암시되었던 사회운동의 상대적 박탈이론이나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론’에서 언급됐던 2차적 엘리트의 창조적 에너지, 그리고 여러 근대화혁명에서의 혁명엘리트들의 사회경제적 성격에 관한 사례연구 등과 같은 가설과 관련된 사회학자들의 연구성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대신 저자가 의식이나 자기 또는 자아의 연구에 집착해 온 것은 아마도 ‘모든 사회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학문적인 신념과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런 선택은 마치 훗설이 ‘의식에 의해 매개된 외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실증주의적 접근을 반대하고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의식과 자기의 문제에 관한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는 물론 인류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 등에 의한 수많은 연구성과들을 오랫동안 섭렵함으로써, 이제 적어도 한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의식, 특히 자기의식에 관한 높은 수준의 이해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와 같은 ‘사회학적 관심에서 출발된 의식과 자기의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의 성과가 다른 동료학자와 후학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출판된 것은 학계를 위해 크게 환영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임희섭(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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