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영문학자 정종화교수 '역사, 위대한 떨림' 번역 출간

  • 입력 2002년 6월 12일 18시 24분


“로렌스는 외설작가로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힘의 분출을 문학과 역사로 규명하려 했던 위대한 사상가요, 제임스 조이스와 쌍벽을 이루는 문호였죠.”

영문학자인 정종화 고려대 명예교수(사진)가 D H 로렌스의 이야기 유럽사 ‘역사, 위대한 떨림’(1918년)을 국내 처음으로 번역했다. 최근 민음사에서 출간된 ‘역사, 위대한 떨림’은 로마에서 독일제국의 탄생(1871년)에 이르는 유럽사의 위대한 순간들을 조명한 대중 역사서.

우리에게 로렌스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작가 정도로나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강의실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원고를 강독하면서 학생들에게 ‘음란하냐’고 물어보면 ‘전혀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당대 상황에서 금기시됐던 개인의 정염을 드러낸 것 뿐이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작가 로렌스가 역사책을 쓰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이 책을 쓰기 전, 그가 심혈을 기울인 대작 ‘무지개’가 법원으로부터 외설 판정을 받았다. 작가와 출판사는 무거운 벌금형을 받았고 후속 작품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학생을 위한 유럽사책의 집필을 제안했다는 것.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런 동기에 의해 쓰게 된 그의 유럽사는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는 아주 독특한 힘을 띠게 됐다고 정교수는 설명했다.

“로렌스는 서문에서 ‘인간의 마음을 진동시켜 역사를 만든 위대한 파장을 설명하는 시도’라고 이 책의 특징을 밝혔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힘의 ‘진동’은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훈족이 유럽을 침공하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는 여러 결과로 나타나죠. 이 힘은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 힘을 포착해 그 파장을 기록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이 이 책 속에 성공적으로 표출돼 있습니다.”

그는 ‘아들과 연인’ 등 로렌스의 문학작품과 역사책 모두가 ‘개인 내면과 열정의 분출’에 대한 ‘인생’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설명했다.

“로렌스는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를 지도자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란 양곡 조달이나 금전 수급을 담당하는 고관(高官)보다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영혼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내면의 영웅’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죠. 그의 책에서 동서양을 연결해 ‘세계’의 개념을 확장한 훈족 지도자 아틸라가 대문호인 괴테 셰익스피어 등과 나란히 놓이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정교수는 최근 작가 이문열씨와 함께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작가 축제에 참석, 이씨의 ‘시인’ 번역에 대한 강연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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