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경헙특집]“5%를 잡아라”…中 부유층만 6500만명

  • 입력 2002년 5월 27일 17시 49분


《5%의 구매력은 흔히 생각하는 중국의 평균 소비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베이징에 사는 주부 원모씨(36)의 경우를 보자. 남편은 칭화대 MBA를 졸업하고 중국 최고의 컴퓨터회사인 롄샹(聯想)의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고 자신은 베이징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100평이 넘는 집에 살면서 고가의 옷이나 가정용품을 살 때는 홍콩까지 쇼핑 여행을 간다. 혼다와 BMW 두 대의 차를 몬다. 이들은 소수지만 구매력에서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중국의 부자들이다.》

중국에 사회주의를 건설한 마오쩌둥(毛澤東)이 혁명의 교두보를 마련한 곳은 강서성의 오지에 있는 정강산이었다. 마오는 국민당군에 쫓기던 1927년 이곳에 세운 소비에트를 근거지로 힘을 길렀고, 마침내 중국 혁명의 불꽃을 피워올릴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중국 인민들에게 정강산은 지금도 혁명 정기의 발원지로 기억되고 있다.

중국시장을 뚫으려는 한 한국 업체가 이 ‘정강산 정신’을 내세워 시장의 두꺼운 벽을 공략하고 있다. LG전자가 중국시장의 심장부를 겨냥해 구성한 ‘정강산 특공대’가 주인공. 정강산 유격대의 기상을 이어받아 중국의 부유층이라는 심장부를 파고들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 8월 구성된 이 팀의 구성원은 모두 21명. 전원이 마케팅을 전공한 중국인이다. 이 팀은 지금까지 약 100여 대의 PDP(일명 벽걸이TV)를 팔았다. 최근 공항이나 정보기술 업체를 상대로 몇 건의 상담이 진행 중이어서 조만간 중국의 공항 등에서 LG로고가 새겨진 대형 TV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정강산 특공대는 중국시장에 일찍 뿌리를 내린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의 변화를 보여준다. 핵심은 중저가 위주에서 벗어나 고가품 중심 전략으로의 선회다.

국내 어느 업체보다 일찍 중국에 뿌리를 내렸지만 최근 저가형 제품이 홍수처럼 밀려들자 값싼 제품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고가품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전략 선회는 현재까지 성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내 LG의 PDP 공장에서 찍어낸 고가의 TV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현재 판매하는 PDP는 주로 40인치와 42인치지만 앞으로는 60인치도 판매할 예정이다. LG전자는 기존의 초대형 프로젝션 TV와 함께 연간 6만대 규모의 고부가가치 TV 양산 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LG는 고가품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작년에 35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기세를 이어가 올해는 40억달러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13억 대륙. 혹은 15억이라고도 하는 중국시장은 양적으로 그 어느 시장보다 넓다. 그러나 LG전자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 가운데 5%에 불과한 인구다. 중국의 부유층으로 분류되는 ‘극소수’ 계층이다.

하지만 13억 인구의 5%는 6500만명으로 한국의 인구보다도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 기업들은 무차별적으로 그물을 던지던 방식에서 벗어나 5%의 부자를 잡기 위한 낚시형 마케팅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5% 공략작전’을 펴고 있다. 중국에서 명품 반열에 올라 있는 휴대전화 애니콜은 소득수준 상위 4% 이내의 부자들을 상대로 거둔 마케팅의 승리다. 애니콜 듀얼폴더의 경우 3000∼4000위안(45만∼60만원)으로 모토로라나 노키아 제품보다도 비싸다. 애니콜은 고가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비싼 값뿐만 아니라 유명감독 첸카이거 등 최고스타를 내세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쑤저우(蘇州)공장에서 제조하는 대형냉장고 지펠은 미국 GE의 제품과 함께 양문형 냉장고 부문에서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쑤저우 외에 부유층이 집중돼 있는 상하이(上海) 지역에 규모가 더 큰 냉장고 세탁기 전용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도 범용 제품은 현지에서 생산하고 고급제품은 한국에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부유층을 파고들고 있다.

놀이공원 에버랜드는 중국에서 애보낙원(愛寶樂園)이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에버랜드의 중국과의 첫 인연은 84년 한국에 불시착한 중국 민항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관광온 게 시작이었다. 인연치고는 기이한 계기지만 이젠 중국인들에게 ‘애보낙원’이란 이름은 제법 귀에 익다.

에버랜드는 한 달에 2, 3번씩 마케팅 요원들을 중국으로 보내 현지 여행사를 통해 관광객을 끌어오고 있다. 현재 15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매년 에버랜드를 찾아오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앞으로는 비행기 기내지와 잡지 방송 등을 통해 더욱 적극적인 광고전을 벌일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신사복 갤럭시로 중국에서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97년 베이징에 처음 점포를 낼 때만 해도 중국 고급신사복 시장은 규모가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거대한 성장잠재력을 내다보고 꾸준히 점포를 확충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쌓았다. ‘양보다 질’을 내세우며 철저히 고급화 전략을 추구했다. 구매층으로는 100만위안(약 15억원)의 자산가로 설정했다.

현재 중국에서 팔리는 갤럭시의 가격은 3000∼4000위안. 중국 대졸사원 평균임금이 약 1000위안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비싸다. 최고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제일모직은 최고급 백화점에만 입점시키고 노세일 전략을 고수한다. 제일모직은 현재 6개인 매장을 12개로 크게 늘릴 예정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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