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60세 은퇴후 '펜션' 운영하는 하윤석-김복순 부부

  • 입력 2002년 5월 14일 15시 55분


집앞 텃밭에 앉아 한가로이 밭을 고르고 있는 하윤석 김복순씨 부부
집앞 텃밭에 앉아 한가로이 밭을 고르고 있는
하윤석 김복순씨 부부
은퇴를 앞둔 많은 이들이 전원에서의 노후 생활을 꿈꾼다. 공기가 맑은 한적한 시골. 아담한 통나무 집. 낮에는 새소리, 밤에는 풀벌레 소리. 남편은 정원을 가꾸고, 아내는 집 앞 텃밭에 심은 채소를 돌보고….

그러나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탓에 선뜻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60세 정년을 모두 채우고 퇴직을 하더라도 일을 그만두기엔 ‘아직은 젊다’고 느껴지는 나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생활비라도 벌려면 당연히 시골보다는 도시가 낫다. 하지만 만약, 전원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도 벌 수 있다면.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집을 짓고 전원 생활을 하는 하윤석씨(63)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주말에는 집을 단체 이용객에게 빌려주는 일종의 ‘펜션’ 사업을 하고 있는 것.

하씨가 전원 생활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그는 “은퇴한 뒤 시골에 집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고 말했다. 충청도 시골에서 자란 아내 김복순씨(59)는 하씨의 제안에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설계도는 하씨가 직접 구상한 구도에 맞춰 그려졌다. 사찰 건축에 일가견이 있는 대목(大木)을 모셔 나무를 하나 하나 쌓아올리기를 2년여. 정년 퇴직을 1년 앞두고 집이 완성됐다. 본채 옆에는 자그마한 정자도 하나 들어섰다. 건축에 들어간 돈은 땅값을 포함해 4억여원.

입주를 하고나서부터 본격적인 전원 생활이 시작됐다. 정원에 진달래 철쭉을 심고 가꾸는 일은 하씨의 몫이었다. 아내 김씨는 마당 옆 100여평의 텃밭을 일궈 상추며 고추며 채소를 가꿨다. 김씨는 “새소리 들으면서 풀 뜯고 가꾸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자랑했다. 뒷산(마니산)을 오르고 가까이 있는 선수포구로 바닷바람을 쐬러 가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하씨는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좋다”고 말한다. 마당에 앉아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것. 집 바로 옆의 널찍한 바위에 올라앉으면 멀리 바다 쪽으로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생활비도 벌고〓

지난해 12월 하씨는 우연히 ‘펜션’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고는 펜션 소개 전문 사이트인 비앤비클럽(www.bnbclub.net)에 회원점으로 가입했다.

하씨는 “전원에서 사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하씨 부부는 주말에는 단체 손님에게 본채를 내주고 정자에서 잠을 잔다. 회사에서 워크숍이나 MT를 오는 손님과 가족 단위의 손님이 반반. 한 번에 오는 손님은 대개 20명 안팎이다. 1박 2일 이용하는 요금은 35만원. 하씨는 “보일러용 기름값 등을 제하고도 두 사람이 쓸 정도의 용돈은 남는다”고 밝혔다.

음식은 이용객들이 직접 준비해 오므로 하씨 부부가 별도로 준비할 일은 별로 없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도록 도구를 마련해주는 일 정도만 하면 된다. 손님들이 뒷정리도 깨끗하게 하는 편이라 청소에도 부담이 없다고.▽가장 큰 소득은 건강한 삶〓

하씨는 직장 시절 부정맥 질환을 앓았다. 잠을 자다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져 병원에 실려간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는 “이 곳에 살면서부터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4년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며 “이 곳의 지기(地氣)가 좋아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집터를 정해준 사람은 친분이 있던 한 풍수지리학자였는데 이 곳은 마니산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정기가 모아져 흘러내려오는 곳이라고 했다는 것.

마음도 건강해졌다. 하씨 부부는 “서울의 이웃에게는 느낄 수 없던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참 좋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처음 집을 지을 때는 마니산의 정기를 가로막는다며 반대하기도 했지만 막상 한 동네 주민이 되고서부터는 그렇게 잘해줄 수 없다는 것. 상량식 때도, 집들이 때도 온동네 사람이 모여들어 함께 기뻐해줬다고.

하윤석씨 부부가 전원생활의 꿈 이루기까지

펜션업을 하면서부터는 손님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까지 생겼다. 하씨는 “은퇴하면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면서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손님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하씨 부부의 집 문 앞에 놓인 바위에는 ‘허심제(虛心齊)’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세속의 욕심을 비우고 자연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라는 뜻입니다.”

강화〓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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