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카페에서 오랜 벗에게 엽서한장

  • 입력 2002년 5월 9일 14시 38분


Q : 연희동에 사는 은미엄마라고 합니다. 주말을 즐긴다, 여가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남의 일로만 느껴집니다. 정말 바쁘거든요. 친척 결혼식이다, 장례식이다 갖가지 경조사에 무슨 정신으로 주말을 보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또 길은 왜 그리 막히는지…. 간단히 말하자면 주말에는 녹초가 돼서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여가클리닉의 이야기들이 남의 일만 같습니다.

A : 제가 여가클리닉을 개업(?)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가 즐기기란 돈 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 아니냐는 반문이죠.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럼 은미엄마는 시간과 돈만 있다면 주말을 정말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유럽의 렌터카회사들이 한국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차를 반납할 때 달린 총주행거리를 확인하는 거랍니다. 2주일 동안 50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민족은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밖에 없다는 거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유명한 곳에서 사진 찍기 위해 달린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이 없어서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한가하고 여유있게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휴가기간도 정신 없이 일하듯 해야만 ‘본전 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자유가 불안하기 때문이죠.

은미엄마! 주말의 바쁜 약속들이 정말로 빠지면 안 되는 일들인가요? 혹시 그 곳에 가지 않으면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은 아닌가요? 이번 주말에는 댁에서 가까운 홍익대 앞 거리들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홍익대에서 극동방송국 방향, 신촌 방향, 지하철 2호선 홍대역 방향의 각 거리가 나름대로 특색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옛날 생각하면서 은미아빠와 팔짱 끼고 거리 구경하다가 햇살 가득한 야외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엽서도 써보는 호사를 부려보는 겁니다. 요즘 멋진 야외카페가 정말 많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러나 그래도 됩니다! 그러라고 주말이 있는 것 아닌가요?

인간관계 관리한다며 사돈의 팔촌까지 챙기면서 바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정말 기억해야 할 사람에게 멋진 엽서 한 장 보내보세요. 별로 감동스럽지 않은 e메일로 필요한 메시지만 전달하는 요즘, 느닷없는 엽서는 야릇한 감동을 줍니다. 처음에는 좀 싱겁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하루 종일 엽서 보낸 이를 생각하게 되고, 왠지 즐거워집니다. 적힌 액수 이외에는 별로 기억되지 않는 축의금봉투와는 차원이 다르죠. 은미엄마는 지난 10년 동안 ‘왠지 즐거운 엽서’ 한 통이라도 받아 보신 적 있으세요?

www.leisure-stud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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