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 새둥지 '서울 발레시어터' 김인희-제임스전 부부

  • 입력 2002년 4월 5일 19시 01분


《‘서울 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38)과 상임 안무가 제임스전(42) 부부. 이들에게 ‘시련은 있되 좌절은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1995년 민간 발레단인 ‘서울…’을 설립해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발레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기 때문. 최근 ‘서울…’은 ‘제2의 창단’을 하는 마음으로 경기 과천 시민회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일까? 따스한 봄볕이 가득한 과천에서 4일 만난 이들 부부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했다. 》

# 과천을 ‘발레 타운’으로

기자가 “과천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과천 발레 시어터’로 명칭을 바꿔야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김 단장은 “과천을 ‘발레 타운’으로 만든 뒤 다시 생각해보겠다”며 웃어넘긴다.

“너무 좋아요. 서울에서는 공연장 대관이 힘들었는데 이곳에 와서 과천 시설공단 측의 배려로 1, 2년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게됐거든요.”(김인희)

“지난 8년 동안 정신없이 온 것 같아요. 그만 둘까 생각한 적도 많았죠. 하지만 이제 좋은 기회가 온 만큼 발레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데 온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제임스 전)

요즘 이들은 2일부터 시작한 발레 전문인 재교육 과정인 ‘굿모닝 클래스’에 나란히 강사로 나서는 등 아침 7시부터 밤 늦게까지 과천 시민회관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새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피곤한 줄도 모르겠단다.

‘서울…’은 6월부터 중고교를 방문해 발레를 소개하는 ‘찾아가는 발레’를, 9월에는 발레와 설명을 곁들인 ‘이야기가 있는 발레’를 마련한다. 시민회관 입주를 기념해 ‘현존 1,2’(7월10∼13일)를 비롯해 창작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0월24∼26일)와 ‘호두까기 인형’(12월20∼25일)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호두까기 인형’ 얘기가 나오자 제임스 전이 말을 거든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은 그대로 가지만 발레와 한국적인 전통놀이를 접목해 새로운 작품으로 꾸밀 계획입니다. 재미있는 것 하나 알려드리면 원래 ‘호두까기…’에 등장하는 쥐 대신 바퀴벌레가 등장하지요.”

그는 미국 네바다 발레단의 요청으로 만든 창작 발레 ‘Inner Moves’의 안무를 맡아 14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발레 부부가 아기를 갖지 않는 이유

김인희 제임스전 부부는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 사태로 협찬이 끊기는 등 어려움에 직면했고, 지난해에는 ‘웨어하우스’ 공연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남모르게 뒤에서 은행 대출을 받아 후원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을 봐서라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서울…’을 운영하면서 본전만 찾아도 다행인 상황이지만 젊은 무용인들이 힘을 합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지요.”

이들 부부는 올해로 결혼한 지 13년째. 그러나 아직 아기가 없다. ‘서울…’ 창단 후 3년만 고생하고 아기를 낳기로 한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한 것. 김 단장은 “이제는 8년된 ‘서울…’이 내 자식과 같다”며 “힘든 시절을 함께 한 30여명의 단원들이 예술가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제임스 전은 “고통 속에서 창작하고 아름다운 안무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예술가를 ‘신부’나 ‘목사’처럼 대우하는 미국 같은 풍토가 아쉽다”면서 “‘서울…’을 국제적인 무용단체로 발전시켜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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