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신문 국유화 발언' 파장]"대주주 사퇴 분명히 언급"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18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지난해 8월1일 민주당 출입 5개 언론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적어도 ‘메이저 신문 국유화’라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큰 발언을 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노 후보 자신은 5일 경인방송(iTV) 토론회에서 당시 발언내용에 대해 “그때 한 기자가 ‘동아일보 사주가 벌금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 친구도 동아일보에 다니는 데 그러면 직장을 잃는 것 아니냐’고 하기에 ‘그럴 리가 있느냐. 언론 사주가 돈 없다고 해도 언론사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도 우리 사주로 잘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방향으로 가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참석한 기자들에 따르면 언론사의 소유지분 제한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노 후보는 “사주 없는 신문이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 같더라”면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그 예로 들었다는 것.

노 후보는 이 말에 뒤이어 “(사주가 퇴진한 뒤) 종업원 지주제로 가면 어떠냐”고 물었고, 기자들이 “돈 없는 사원들이 무슨 돈으로 동아일보 주식을 사느냐”고 되묻자 “한국은행 채권(일부 기자는 ‘융자’라고 말했다고 주장)을 발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는 것이 참석 기자들의 전언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겨레신문 기자는 “(노 후보가) 시민언론 단체에서 추진 중인 소유지분 제한과 사원지주제를 염두에 둔 듯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사원들이 소유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 특별융자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했다”고 6일자 한겨레신문에 밝혔다.

노 후보의 이 발언에 대해 A기자는 “공영화를 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고, B기자 또한 “주식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공유한다는 의미 같았다”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그게 사실이라면 ‘언론 국유화’로 해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앞서 노 후보는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전 명예회장의 거취 문제와 ‘동아일보 폐간’ 운운의 발언을 했다는 게 참석 기자들의 전언이다.

한 참석 기자는 이인제(李仁濟) 후보측 김윤수(金允秀) 공보특보가 공개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폐간시켜 버리겠다”는 노 후보 발언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 것 같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한겨레신문 기자도 “기자들과의 대화 중에 ‘(사주가) 퇴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폐간’이란 표현도 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노 후보는 5일 TV토론회에서 “동아일보 폐간 얘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가 문을 닫는다면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말한 것 같다”며 “국유화나 권력으로 폐간하려 했다든지 하는 말은 와전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의문점은 김 전 명예회장이 이날 술자리 이전인 지난해 7월27일 동아일보 명예회장직을 사퇴했다는 사실을 노 후보가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당시 여권 핵심부의 분위기로 볼 때 노 후보가 ‘대주주의 권리 박탈’을 ‘사퇴’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노 후보가 동아일보를 거론하기에 앞서 술자리에선 오랫동안 조선일보가 도마에 올랐다는 것은 당시 참석 기자들의 일치된 전언이다. 노 후보는 조선일보를 ‘수구언론’으로 지칭하며 비판을 계속했다는 것.

하지만 그가 워낙 조선일보와 그동안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기자들은 ‘특별한 얘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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