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귀족' 새로운 계급이 뜬다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16분


전직 기자가 만든 한국경제리서치(www.researchpool.com)는 최고경영자 대상의 인터넷정보서비스 ‘CEO경영정보’의 회원이 1년 만에 2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은 무료’라는 상식을 뒤집듯 이 서비스의 연간 이용료는 100만원. 하지만 회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종준 대표는 “고급 정보를 원하는 ‘정보 귀족’에 걸맞은 정보를 공급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회원의 90%는 최고경영자(CEO), 재무담당 최고임원(CFO), 기술담당 최고임원(CTO). 토요일에 한번씩 e메일로 전달되는 55페이지 짜리 보고서에는 시중자금동향, 자본유치를 위한 정보, 시중 ‘찌라시’ 정보가 담겨 있다. 회원이 요청할 경우 맞춤 정보 형식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고급정보를 원하는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엄정보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SERICEO’(www.sericeo.org)의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이 시장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당초 삼성 계열사 CEO에게만 특화된 정보 서비스를 해왔으나 이를 다른 기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최고경영자들이 시간에 쫓기는 점을 감안해 의사결정과 직결되는 경영, 경제, 산업분야의 핵심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 서비스의 모토다. 전달방식도 두꺼운 보고서나 텍스트가 아닌 동영상과 파워포인트 및 오디오 같은 멀티미디어 방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연간 이용료가 100만원이지만 CEO로서는 큰 부담은 아니다. 수익보다는 일단 고급정보시장의 저변 확대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콘텐츠를 살짝 들여다보면 ‘흔들리는 미국 문화헤게모니’ ‘국제 금융산업의 판도변화’ 등 ‘정보귀족’의 귀가 솔깃할 만한 것들이 들어 있다.

단순히 경영 경제 정보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의 흐름 등 단순 뉴스를 넘어 깊이있는 정보를 원하는 정보이용자를 위한 유료사이트도 등장하고 있다. 전략적 예측(Strategic Forcasting)의 약어로 미국의 유명 정보사이트인 스트렛포의 정보를 독점 공급하는 스트렛포(www.stratfor.co.kr)가 그런 부류다.

이 사이트를 운용하는 장규성 사장은 “경영 경제 정보에 대한 단순한 뉴스 전달이 아니라 CEO나 사회지도층이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여야 한다”며 “그런 생각이 들 때에만 정보에 돈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고급 정보’를 게시판에 올려놓고 일정액의 제공료를 요구하면 필요한 사람이 그 정보를 사는 방식의 인터넷 정보브로커 사이트도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고급정보 서비스의 등장은 인터넷 콘텐츠의 유료화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CEO 대상의 경영정보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축산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드림엑스팜이 지난해 말 98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유료화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업체의 30% 이상이 ‘고급정보라면 유료화돼도 돈을 낼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고급정보의 수요에 해당 업체도 놀랐을 정도. 이에 따라 기업간(B2B) 전자상거래업체들이 하나 둘 콘텐츠 유료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료화에 나선 화학제품 전자상거래업체인 케미즌의 경우 20만개가 넘는 화학물성 정보를 비롯해 전세계 제조업체 및 바이어 리스트와 계통도를 연동해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석유 화학제품 가격정보 및 이슈별 전망에 대한 화학 전문가들의 심층보고서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무역 관련 전자상거래 업체 4개사도 최근 유료화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만들고 있으며 의료 관련 전자상거래업체들도 기존 정보채널에서는 접하기 힘든 고급정보 위주로 유료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신문 칼럼 사설에서 세상 큰흐름 읽어

하루 하루 은행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받을 시간이 어디 있나요?(김정태 행장의 화법은 직설적이다) 그건 부행장선에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럼 집무시간에 뭐하냐고요. 절반은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나머지는 그냥 생각해요. CEO역할이란 것이 세상의 흐름을 읽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이니까요.

중요시하는 정보는 당연히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바로 신문의 칼럼과 사설들입니다. 속보 뉴스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전문지까지 포함해 거의 모든 국내 신문들의 칼럼은 직접 훑습니다. 비서진은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 지 모르니까요. 찢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고 틈나는 대로 꺼내 읽어요. (1일 만난 김 행장의 집무용 책상 위에는 ‘농민신문’ 칼럼까지 놓여 있었다.)

밀린 것은 모아두고 주말에 한꺼번에 읽습니다. 해외뉴스요? 머리만 아파서, 직접 관련된 것 아니면 별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전략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맥킨지를 활용하죠. 하지만 맥킨지가 전하는 해외 선진경영정보도 맹신해선 곤란하다고 봐요. 실제 도입해보니 국내 상황과 맞지 않아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몇몇 경우 그 해법을 지금 맥킨지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난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해외 정보는 믿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독특한 경영방식이라는 해외정보가 입수되면 모든 일 제쳐두고 직접 찾아갑니다. 스페인 은행으로부터 은행 합병시 본점만 통합하고 지점은 그대로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걸 배웠어요. 영국 포르투갈 미국 호주 등도 지난해 많이 다녔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같은 정보를 보고도 깨닫지 못해요. 결국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바로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質)을 좌우한다고나 할까요.

▼LG전자 구자홍 부회장/출장길 공항 분위기 보면 경기도 보여

나는 인터넷에 감사해요. 1년의 3분의1을 해외에서 보내는 나로서는 어디서나 사람과 정보를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가장 즐거운 일도 인터넷을 통해 일어납니다. 매일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맞은 임직원들에게 축하카드를 보내는 일로 업무를 시작합니다. 인터넷이 정보 창구이기도 하지만 훈훈한 정을 보낼 수 있는 통로로 저에겐 더 소중합니다.

참 오늘 주제는 ‘CEO의 정보학’이죠.

어떤 정보를 가장 유용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해외CEO에 대한 정보를 꼽겠어요. 아침마다 해외에서 사귄 CEO들로부터 날아오는 e메일은 세상 흐름을 읽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해외 주요 CEO들의 칼럼이나 관련 기사는 제가 절대 놓치지 않는 정보 소스죠. 만약 놓칠 경우 일일이 찾아서 읽어보고 복사해 직원들에게 나눠줍니다. 일종의 정보 공유죠.

하지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정보의 공유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이때 정보란 본의 아니게 저지르게 된 실수나 오류 같은 것을 말하는 거예요. 불황기일수록 이를 숨기려 하는데 모두 공개하고 함께 해법을 찾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정보의 공유’인 거죠.

하루 단위로 보고를 받는 정보는 A4지로 30장 정도로 기사, 업무정보, 정치사회동향 정도입니다. 노동정책 등 종업원 복지에 영향이 미치는 것은 꼼꼼히 봅니다. 또 해외출장이 잦다보니 주요 공항의 승객변화 추이를 보면서 경기를 파악하는 노하우도 생겼어요.

참 지난해 9월에 만든 제 인터넷방(John Koo’s web site, www.digital-ceo.com)에 한번 들러 주세요. 저녁 퇴근 후 매일 들어가는데 방 꾸미는 데 재미가 붙었나 봅니다. 다른 CEO사이트를 둘러보며 뒤지는 것이 없나 신경이 쓰일 정도니까요.

▼KTF 이용경 사장/e메일 소식지로 '검증된 정보' 추려

매일 직접 보고받고 접하는 정보는 일단 요약 축적된 것입니다. 이걸 풀어놓으면 아마도 A4 용지로 400장은 넘을 것이라는 게 비서실 얘기예요. 결과적으로 하루 400장 분량의 정보를 진액만 섭취하는 거라고 봐야죠. 국내 신문 스크랩은 기본이고 휴대전화 소통률과 절단율 등 경영정보는 일일 단위로 올라옵니다. 뉴욕타임스 등 외국 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CEO가 기본적으로 봐야할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승부를 걸만한 정보는 딴 곳에서 얻어요. e메일로 받아보는 정보지 비슷한 ‘CEO 리포트’라는 것이 있는데 정계, 업계, 노동계 등의 맥(脈)을 짚는 데 효과적입니다. 증권가나 기업 정보팀이 수집한 이른바 ‘재야정보’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지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서 코멘트를 한 것이죠. 임원들이나 그 밑의 직원들에게 인쇄해주고 싶은 내용도 많은데…. 재미있는 것은 인쇄를 못하게 보안장치가 돼 있다는 겁니다. 일종의 ‘노블레스(noblesse·귀족계급이라는 뜻)정보’인 셈이지요.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정보 소스로 활용하는 CEO들이 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신 저는 e메일을 많이 활용하죠. 쓸데없이 스팸메일만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중간에서 걸러지지 않고 e메일로 직접 전달되는 소비자들의 의견이 저에겐 가장 중요한 정보입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도 정보 소스로 많이 활용합니다. 국내이동통신업계 뿐만 아니라 세계 이동통신업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정보의 홍수’ 가운데 어떻게 보석을 찾느냐고요. 스파크가 튀는 정보가 있어요. 그건 어떻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그냥 ‘본능적’이라고만 알아두시죠.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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