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전쟁, 분석력-동물적 감각이 승부 좌우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00분


증권가처럼 ‘정보는 돈’이란 말이 와 닿는 곳은 없다. 특히 증권 정보의 본산인 증권사 리서치센터 책임자에겐 더욱 그렇다. 삼성증권 리서치헤드인 이남우 상무의 하루는 오전 5시반 조선호텔 헬스센터에서 CNBC를 보면서 아시아 금융시장을 훑는 것으로 시작된다. 6시 15분 서울 을지로의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다가가는 곳은 블룸버그 단말기 앞. ‘TOP’을 입력하면 우리 시간으로 밤중에 벌어진 세계의 주요뉴스가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된다.

금융계에서 금융정보 단말기는 ‘쌀’처럼 기본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블룸버그는 고객들에게 자사에서 제공하는 뉴스중 5%만 활용해도 많이 활용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상무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만큼 실시간으로 뜨는 정보량이 많다. 쏟아지는 정보를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는 오전 6시 40분 정보기술(IT)미팅과 애널리스트, 투자전략가들이 참석하는 7시15분 모닝미팅에서 윤곽이 그려진다. 각자 접한 기업뉴스와 업종 동향 등을 주고 받는다. 이어 7시50분경에는 홍콩 뉴욕 등의 해외 세일즈맨을 연결해 콘퍼런스콜을 벌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정보는 ‘펄펄 살아있는’ 것도 아니며 ‘돈 되는’ 상태로 익혀진 것도 아니다.

“1차 정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를 투자정보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확인작업이 필수입니다. 미팅이 끝나면 애널리스트들은 각자 담당 기업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뉴스로는 매출이 늘고있다는 A기업의 경우 직접 방문해보니 사무실 정돈상태나 PC배치 등이 왠지 조잡해보인다. 일단 A기업의 호재성 뉴스는 좀 더 확인해봐야겠다는 직감이 든다. 최근 부상하고 있다는 벤처기업을 방문했더니 사옥이 너무 화려해 왠지 꺼림칙하다.

“바로 이처럼 뉴스에 등장하지 않고 기업실적 등의 수치로도 도저히 나타나지 않는 느낌같은, 정성적(情性的)인 정보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똑같은 정보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해 내느냐도 리서치 담당자들에겐 일종의 진검승부다. 지난해 3·4분기 삼성전자는 적자를 기록했다. 다들 삼성전자의 적자가 지속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부정적인 주가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독 한 증권사만 3·4분기 실적을 보고 ‘삼성전자는 반도체회사가 아니라 이제 통신회사다’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통신단말기 등 통신부문의 매출과 이익이 급신장해 휴대전화 사업부문만 보면 영업이익률이 세계 1위인 노키아보다 높았던 것. 이 해석은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주가는 이를 반영하듯 강세를 보였다.

이 상무가 ‘아플 때’도 바로 이런 일을 경험할 때다. “가장 돈을 잘 버는 헤지펀드 펀드매니져들과 통화하면서 ‘아차’하는 순간이 있어요. 똑같은 경제정보를 놓고 색다른 해석을 하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거든요. 물론 다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같은 정보를 어떻게 보느냐가 투자수익에 영향을 미치죠.”

하지만 최근 불거진 메디슨 부도사태와 미국의 엔론사태에 대해 정보를 다루는 시장분석가들은 할 말이 별로 없다. 시장 전문가들이 기업실적 등 1차정보를 가공해 내놓은 분석정보들이 상당 부분 틀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장이 해석하는 것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쉽지 않아요. 물론 맞으면 삼성전자의 예처럼 시장에서 뜨지만 이 같은 모험을 하기는 어렵죠. 또 회사에서 내놓은 1차정보가 왜곡됐을 때 이를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어요.”

‘정보에 대한 실체적 접근.’ 경제 정보를 다루는 시장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숙제임은 분명한 듯하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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