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해외학술비용 전액 지원”다국적 제약사 공격적 ‘접대’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02분


의약분업 이후 국내 제약업계를 석권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의사들의 해외학회 참석 후원 규모를 크게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제약회사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1일 제약업계와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 모임인 ‘한국 다국적 의약산업협회(KRPIA·회장 마크 존슨 한국릴리 사장)’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거래경쟁규약(안)’을 제출했다.

이 규약은 외국계 제약 회사들이 자체 공정 경쟁을 위해 만든 것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모임인 한국제약협회가 94년 12월부터 ‘공정 경쟁 규약’을 제정해 지켜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규약에는 제약협회의 관련 규약과는 상당부분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행보조’ 관련 조항. 국내제약업계는 의사들이 해외 학회나 심포지엄에 참가할 때 팀장에게만 항공료와 숙박비 등 여행경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KPRIA는 ‘회의 참석이 주 목적인 참석자’ 모두에게 경비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제공하는 항공기 좌석도 제약협회가 일반석(이코노미클래스)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 등급 높은 비즈니스클래스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또 제약협회가 제공하는 비용을 등록비와 식대 숙박비 등 공식 학회 활동으로 한정한 데 비해 KRPIA는 ‘합리적인 수준의 여행경비’도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학회 활동 외에 ‘접대비’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이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발행할 때 외국제약사의 약품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한 판촉 수단으로써 방치할 경우 결국 영세한 국내 제약사들이 고사하게 될 것”이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한 외국제약사 관계자는 “외국계 회사는 회계 처리가 엄격해 리베이트 등의 음성적인 비용을 지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공식적인 지원 시스템을 갖출 수밖에 없다”고 이 같은 규약을 제정한 배경을 밝혔다.

한 의료 관련 여행사는 학회 참석 등의 명목으로 제약회사의 경비 지원을 받아 해외에 나가는 의사가 연간 5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제약회사들은 의사의 해외 학회 참가활동비 지원 외에도 국내에서 의사들이 주관하는 각종 학회와 심포지엄 등의 경비를 분담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KRPIA는 파마시아 바이엘코리아 한국애보트 한국노바티스 등 26개사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제약협회 회원사는 극소수의 외국계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내제약사다.

조헌주기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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