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출가 김아라, 그는 날마다 부수고 날마다 세운다

  • 입력 2001년 12월 4일 18시 13분


연극 연출가 김아라(45).

꼬리를 살랑거리는 두 강아지랑 마중나온 그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작았다. 160㎝이 될까말까? 작은 체구에 ‘빠알간’ 입술이 주변의 시골 냄새와 어울리지 않는다.

경기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1997년 그는 물이 찰랑찰랑 하던 논바닥을 야외공연장으로 만들었다. 1년전인 96년 김아라가 물이 가득찬 논을 가리키면서 ‘이 곳이 내 극장’이라고 말하자 당시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예술감독 요하네스 오덴탈은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연출가에서 토목기사로 변신한 김아라와 그의 극단인 ‘무천’ 단원의 땀, 그리고 포크레인 한 대와 트럭 200대 분량의 흙이 이 논을 1500여평의 번듯한 극장으로 변신시켰다.

사람을 놀래키는 게 특기인 ‘죽산댁’은 최근 또 ‘사건’을 만들었다.

안성시가 죽산댁의 ‘꼬임’에 빠져 야외 공연장에서 채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300여석 규모의 실내 공연장을 세운 것. 창단 10주년을 맞은 ‘M(무천)캠프’는 이를 계기로 야외공연장 실내 공연장 극단 등을 연결하는 3원 시스템으로 죽산을 문화 캠프로 바꿀 예정이다.

그는 15일부터 극단 창단 10주년 기념작 ‘레퀴엠’으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 프랑스 극작가 장 아누이의 ‘그리운 앙트완느’를 재해석한 희극이다.

김아라의 불가사의한 힘과 도발적 정열은 어디서 나올까. 그를 상징하는 단어는 이렇다. ‘패셔너블(Fashionable)’, 스타일리스트, 실험, 도발, 열정, 모던….

지난 주 그가 ‘찰칵’ 사진을 찍던 날.

김아라는 “나는 빨간 립스틱과 선글래스가 있어야 제격”이라며 “왜 신문은 선글래스 낀 사진을 안쓰지. 이 포즈가 좀 낫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연출하는 게 아니라 배우가 된 한 컷의 사진에도 그는 생각이 많다.

이같은 그의 활기가 없었다면 가뜩이나 한산한 연극계는 더 ‘심심’하지 않았을까?

그는 지난해까지 그리스 비극에 이어 98년부터 ‘인간 리어’ ‘햄릿 프로젝트’ ‘맥베드 21’ ‘인간 오델로’ 등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재해석에 몰두해왔다. 이 작업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음악극에 대한 모색이었다. 선과 악의 갈등,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등 인간의 원초적인 딜렘마에 클래식 타악 판소리 무용이 어우러졌다.

“난 뒤집고 흔들기, 그래서 전혀 새로워지는 작품을 사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아라가 아니죠.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재해석했으니까 또다른 목표를 찾아야죠.”

야외공연장 뒤 직접 돌을 나르고 설계한 불그스름한 ‘성(城)’에서 빨간 입술의 공주는 이렇게 말했다.

“96년 내가 죽산에 내려간다니까 사람들은 다 걱정했죠. ‘김아라가 도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살지?’였죠. 조금만 기다리면 죽산이 또다른 문화의 시발점이 될 겁니다. 21세기 공연은 대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대안을 찾게 될 겁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김아라 극단 '레퀴엠' 15일부터 무대에▼

연극 ‘레퀴엠’은 프랑스 극작가 장 아누이의 ‘그리운 앙트완느’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누이는 ‘도적들의 무도회’ ‘반바지’ 등으로 프랑스 부조리극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레퀴엠’은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을 ‘복합음악 장르극’으로 재해석해온 김아라의 작품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희극이다.

이 작품은 유명 극작가의 자살로 시작된다. 사랑과 우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인의 삶과 연결된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뜻밖의 눈사태로 산장에 갇힌 사람들은 유언장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세속의 욕망과 악취를 풍긴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원로배우 김금지 권성덕, 중견배우 이승옥 정재진 남명렬 박상종 정경순 등.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가 음향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공연은 15일부터 25일까지 평일 오후 7시, 토 오후 3시 7시, 일 오후 3시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1만∼2만5000원. 02-745-6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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