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체코 필 공연, 말러의 현란한 관현악법 '그때 그대로'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38분


“말러 7번 교향곡 ‘밤의 노래’는 구성이 치밀하지는 않다. 대신 일종의 ‘만화경’이랄까, 수많은 ‘탐미적’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번스타인은 최고의 말러 지휘자 중 하나였다. 과장이 두드러지지만, 과장하는 ‘방향’은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15일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와 만난 기자는 이 두 가지 언급에서 그의 말러관을 엿볼 단서를 얻었다. 단서는 틀리지 않았다.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체코 필하모니 내한연주회. 말러의 교향곡 7번을 지휘한 아시케나지는 풍요하면서도 치밀한 합주음색으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말러의 세계를 신비롭게 펼쳐보였다. 번스타인식의 과장이나 자의적 해석의 강조는 전면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신 아시케나지는 대편성으로 유명한 말러의 악보 구석구석을 완전히 장악한 듯 했다. 체코 필은 기능적으로 완벽했지만 그 정밀함을 밖으로 열심히 드러내기보다는 온후하면서도 밸런스가 잘 잡힌 음색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성실함’을 갖고 있었다. 한밤의 ‘도깨비꿈’ 과 같은, 어둠과 빛이 어울리는 말러의 독특한 관현악법이 온전한 빛깔을 갖고 살아났다. 곳에 따라 현의 에너지감이 모자라게 들리기도 했지만, 술렁이는듯한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 호른과 바이올린독주와 기타 만돌린이 어울리는 4악장에서도 잘 색채를 섞어내는 음색의 ‘팔레트’는 훌륭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기자는 “짙고 풍요한 합주음색을 살리면서 세부가 잘 살아나는 연주를 하고 있다”고 지휘자로서 아시케나지의 리더십을 말하자 그는 “자기 음악의 특색을 말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한발 뺐다. 그러나 음반에서 확인돼 온 ‘풍요함과 또렷함’의 행복한 동거를 이날 연주에서 십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러의 곡에 앞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이성주는 1악장에서 약간 기교적으로 흔들렸다. 높은 음을 섬세하게 짚지 못하거나 빠른 경과악구에서 템포가 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도 반주악단과 호흡의 선이 끊어지지는 않았고, 첫 악장이 끝나기 전에 그는 이미 안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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