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천불천탑 원나라가 조성" 중앙박물관 소재구씨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37분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전남 화순의 운주사(雲住寺). 이 운주사의 천불천탑이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에 의해 1270년경 군사 목적으로 조성됐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재구 학예연구관(한국미술사)은 최근 완성한 논문 ‘운주사 탑상(塔像)의 조성 불사(佛事)’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고려를 침략한 원 군부가 고려 삼별초군에 맞서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운주사 천불천탑을 조성하고 이곳에서 원 병사들의 무운(武運)을 빌었다는 게 요지. 소 연구관은 24일 경남 김해시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열리는 국립박물관 학술대회에 이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운주사를 둘러싼 산중 계곡에는 18기의 석탑과 72기의 석조불상이 밀집해있다. 이 석탑과 불상들은 고려 말기의 질박하고 토속적인 모습과 함께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찰에 무더기로 탑과 불상을 조성했다는 점도 한국 전통 불교 양식에서 벗어난 것.

소 연구관은 “천불천탑 조성은 양적인 면에서 볼 때, 엄청난 석재와 인력을 동원한 대규모 사업”이며 “대부분의 탑과 불상의 스타일이 일률적이라는 점에서 고려말 어느 시점에 단기간에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단기간에 많은 석공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재력과 행정력을 지닌 세력이다. 그런데 천불천탑은 고려의 사찰 배치 양식이 아닌데다 탑과 불상에서 이국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운주사 불사는 비고려인, 즉 외국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 연구관은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고려말이라는 시기와 이같은 정황을 감안해볼 때, 그 주인공은 당시 고려를 지배한 원나라 몽골족의 군부세력”이라고 단언했다.

소 연구관은 천불천탑이 몽골풍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세가지 제시했다.

첫째, 몽골인들은 티벳불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라마불교의 신봉자들로, 다탑 조성의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둘째, 운주사 불상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길쭉한 타원형 얼굴에 긴 코와 손모습에서 이국적 형상을 드러내고 있는 점. 탑의 경우, 원반형탑 계란형탑과 같은 라마풍의 낯선 모양이 나타나 있다.

셋째, 탑에 나타나는 마름모형 X자형 등의 무늬는 몽골식 장식 도안과 관련이 있다는 점.

원나라는 하필 화순에 천불천탑을 세웠을까. 소 연구관은 “당시 진도 제주도에서 몽골에 항전하는 삼별초군에 맞서기 위해 가까운 곳에 군부의 주둔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천불천탑 조성 연대는 삼별초군의 대몽항쟁기인 1270년경”이라고 주장했다. 화순은 인근 나주평야에서 군량미를 동원할 수 있었고 당시 국제 항구였던 영산강의 포구를 통해 중국과 교류가 수월해 군사 주둔지로는 제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운주사 천불천탑과 관련해 고려 후기∼말기에 조성됐을 것이란 추정만 있었을 뿐, 누가 왜 이 절을 세우고 탑과 불상을 만들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통일신라말 호족들이 세웠다는 설, 도선국사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설, 미륵혁명사상을 믿는 천민 노비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설 등이 있었지만 모두 학문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견해들.

소 연구관의 견해는 비교적 학문적인 신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유물이나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논란도 예상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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