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그윽한 선율'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37분


아침, 건너편 아파트 동(棟)들 사이로 먼 산자락 한 뼘씩을 비춰주던 창문이 오늘은 그저 뽀얗게만 보인다.

그러고 보면 가을이 찾아온 것은 한 순간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침 저녁으로 살끝을 간지럽히는 뽀송뽀송한 공기의 감촉이 살가왔고, 정오의 햇살도 눈부시게만 느껴졌었지. 그러나 가을의 끝은 어떤가. 단지 겨울의 한자락에 묻혀 아득하게 잠겨갈 뿐, 분명한 자취를 갖지 않는다.

첫눈을 만나기 전에, 산에 한번 올라야 하지 않을까? 이파리가 다 떨어진 앙상한 고목들의 능선. 그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휴대용 플레이어로 듣는, 또는 마음속으로 불러내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매력은 각별하다.

그의 교향곡 7번 E장조, 2악장 아다지오를 ‘마음속의 오디오’로부터 불러낸다. 브루크너가 평소 존경했던 바그너의 죽음을 대해, 그를 추모하며 쓴 악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호른과 ‘바그너 튜바’의 긴 지속음(持續音)은 마치 능선 사이로 잠겨가는 흐릿한 햇살과도 같다. 설레는 걸음걸이는 야트막한 봉우리를 돌아 한굽이를 지난다. 절벽 아래로 또하나의 서늘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 햇살을 못받은 계곡에서는 젖은 흙냄새가 풍긴다.

머뭇거리는 듯한 금관의 약주(弱奏), 이어 다시 현의 짙은 울림. 또 한해가 이렇게 저물어갈 모양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일들에 골몰해 왔던가! 그러나 못내 포기하지 못할 소망이 있고, 노을은 저리도 찬란하다. 금관의 찬연한 포효와 심벌이 불을 뿜는다.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는 발걸음이 바쁘지만, 바그너 튜바의 그윽한 최후의 지속음은 계속 머리속에 남아 있다….

얼마 전 지휘대에서 쓰러져, 마치 영웅의 최후처럼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던, ‘지휘계의 철학자’ 주세페 시노폴리의 연주로 이 낭만주의 성숙기의 대곡을 듣는다. 구 동구권의 명가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악단이 그 명성대로 숙연하고도 장엄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20세기의 거대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의 연주로 대하는 브루크너 역시 사뭇 새로운 감흥을 준다. 시노폴리쪽이 단정하고 잘 마무리돼 있으며 정제된 울림을 전해준다면, 카라얀의 연주는 더 스케일이 크고, 높이, 멀리 펼쳐져 있으며 ‘단호’하다.

오스트리아 산골과 빈을 오갔던 그의 성장환경이 브루크너와 겹쳐지기에, 더욱 공감이 컸을 지도 모른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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