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장민호의 연극인생 파노라마 '그래도 세상은…'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48분


연극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50여년간 무대에서 살아온 원로배우 장민호(77)의 삶이 배어 있는 작품이었다.

“요새 젊은이들 성급해. 연극은 마라톤이야.” “배우의 은퇴는 죽음이예요.”

장민호는 극중 주인공인 노배우 황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굴곡이 적지 않았던 무대 경험의 ‘진실’이 담긴 그의 대사는 저항하기 어려운 공감으로 이어졌다. 배우란, 연극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래도…’는 원로극작가 이근삼(73)이 40여년간 무대 안팎에서 만난 장민호의 삶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극중 황포의 변덕을 받아내며 우정을 나누는 70대 노변호사(윤주상)는 이근삼의 분신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장민호의 생애를 담은 자서전적인 연극이지만 개인사보다는 연극 인생에 무게를 실었다. 황포와 후배 여배우 낙희(정재은)로 상징되는 연극계의 현실과, 함께 노년을 맞는 황포와 노변호사의 우정이 다뤄졌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장민호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울림이 많은 목소리에 실린 묵직한 연기가 돋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기립박수는 ‘영원한 현역’에 대한 찬사이자 보상이었다. 극중 황포를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연극계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하는 ‘리어왕’의 힘찬 독백은 중년의 장민호를 연상시켰다.

노배우의 열연에 찬사를 보내지만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연극계의 ‘어제와 오늘’은 촘촘하게 다뤄진 반면 황포라는 한 인간의 드라마는 극적이지 못했다. 낙희가 선물한 보청기에 대한 황포의 짜증, 황포와 유령이 된 선배의 대화, 장애인 부부의 출산 등 몇몇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무대에서 연극계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크게 들렸지만 배우 장민호를 만나다 만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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