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정 남산공관 '문학의 집'…문화가 숨쉬는 '열린공간'으로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46분


서울 남산의 단풍이 절정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황홀한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울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곳곳에 ‘숨어있는’ 남산 주변에 최근 또 하나의 문화 명소가 등장했다.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서울’이 바로 그곳이다. 이 집은 중앙정보부가 예장동 일대에 청사 일부를 세우면서 75년 한 기업가로부터 사들여 부장 공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곳. 90년 국가안전기획부가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권력 실세들이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마법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단장돼 순례객들을 맞고 있다.

서울시는 96년 이 공관과 근처 경호팀 숙소 등을 사들여 문서 창고 등으로 써왔으나 올해 초 시인 김후란씨 등의 제안으로 ‘문학의 집’으로 개축하는 것을 승인했다. 김씨는 “올 1월 처음 이 집을 구경했는데 흰 눈이 쌓여 있었다는 점을 빼면 ‘10년 폐가’의 모습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기획의 큰 틀은 ‘닫힌 권력의 집’을 ‘열린 문화의 공간’으로 바꾼다는 것. 이 집이 남산 북쪽 산자락의 숲 언저리에 자리한 점 등을 감안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바꾼다는 것도 큰 틀의 하나였다. 개조 비용 전액(현재까지 4억원)을 지원한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이 직접 개조 기획을 했으며 오리콤 스페이스 커뮤니케이션(SC)팀이 설계했다.

큰 틀에 따라 집 전체 색조와 공관 내부를 깔끔하게 바꿔내고 전시 세미나실로 만들었다. 한 작가는 “인테리어의 마술”이라고 말했다.

첫째, 색조를 화이트톤으로 바꿨다. 이전의 공관은 갈색 우드톤. 권위와 안정감을 주지만 음습하고 폐쇄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획팀은 건물 안팎의 모든 벽, 창틀 등을 화이트톤으로 바꿨다. 바뀐 공간은 경쾌하고, 청결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실내 계단이 확 살아났다(사진1).

둘째, 큰 문들은 없애고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대문의 중간 기둥과 상부 구조물을 없앤 대신 스테인리스로 된 미닫이 소형문을 만들고, 2중 현관문의 안쪽 문을 떼어냈다(사진2).

셋째, 정원을 정돈했다. 연못을 메우고 시 낭송회 등을 위한 스테이지를 만들었다(사진3).

넷째, 지하를 태양 아래로 해방시켰다. 지하층에 환한 볕을 끌어들이기 위해 건물 앞 정원을 너비 2m, 깊이 3m 가량 과감하게 파버리고 지하층에 대형 통유리로 된 출입구를 만들었다(사진4).

다섯째, 방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였다. 벽 밑바닥까지 내려오는 초대형 통유리창을 만들어 정원의 단풍나무, 신갈나무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밖에서 보아 현관 바로 오른쪽 방은 벽을 1m 정도 정원 쪽으로 끌어당겼다. 창 바깥에 바로 정원의 잔디가 보이게 됐다 (사진5).

여섯째, 작은 아이디어들을 발휘했다. 1층 전시실 수납장은 손잡이 대신 문을 건드리면 열리는 원터치식으로 만들어 시화 등을 전시할 벽으로 꾸몄다.

세미나실 천장에도 둘레를 돌아가며 픽처 레일을 깔아 시화 등을 걸 수 있는 전시실로 쓸 수 있게 했다.

오리콤 SC 팀은 ‘문학의 집·서울’과 마주 보고 있는 과거 안기부장 경호팀 숙소용 주택 2개 동도 개조할 계획이다. 1개 동은 문학의 집 사무처로, 다른 1개 동은 외국 문인들이 방문했을 때 호텔 대신 제공할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할 계획.

리모델링팀은 “3개의 건물 개조가 완성되면 ‘열린 문화의 공간’ ‘자연 친화’라는 주제 외에도 ‘문화와 안식의 조화’라는 주제가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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