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나이폴 작품세계]민족 정체성 풍부한 언어로 그려내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0시 50분


비디아다르 나이폴은 이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데릭 월컷, 나딘 고디머, 토니 모리슨 등과 함께 20세기 후반 인문학 전반에 확산된 탈식민 정서를 대변해온 대표적 소설가다.

나이폴은 서구 제국주의 해체와 더불어 제3세계에서 두드러졌던 탈식민의 모순적 상황과 소외의식이 낳은 혼성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지식인이다. 인도,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토바고, 영국 등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이 말해주듯이 나이폴의 작품은 서구 제국주의가 강요한 문화적 혼성을 비판하고 식민화 이전의 민족적 정체성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초기 소설은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첫번째 자전적 소설 ‘비스워스 선생의 집’은 인도 혈통인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가 트리니다드에서 경험한 망명적 삶을 상상력이 풍부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 소설 ‘어둠의 지역’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소설을 발표한 직후 고국 인도를 방문한 주인공(작가 나이폴)이 오랜 서구 식민주의의 폭력과 탈식민 상황의 모순이 중첩된 조국마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는 뼈아픈 체험을 담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나이폴의 작품세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세번째 소설 ‘스톤 선생과 기사 친구들’에서는 배경이 영국으로 옮겨지며, 작품의 기조도 초기 소설들보다 진지하고 철학적이다. 이 소설에서 나이폴은 서구 제국주의의 중심인 영국과 이 제국에 수탈당한 식민지 트리니다드 어느 한쪽에도 동화될 수 없는 소외감을 드러내며, 식민자와 피식민자 모두에 대한 환멸을 표현한다.

탈식민 시대의 망명적 상황에 처해 있는 지식인에 대한 나이폴 자신의 애정과 냉소를 가장 복합적으로 드러낸 소설은 대표작 ‘흉내’이다. 주인공 싱은 트리니다드를 상징한 가상의 나라 이사벨라의 서구화된 역사가. 피식민인으로서 식민지배자의 것을 흉내내는 탈식민 시대의 지식인의 초상으로 그려진다.

그의 후기 문학세계는 부커 문학상을 수상한 ‘자유국가에서’로 시작한다. 나이폴은 과거의 문학 형식을 벗어나 장르의 다양한 넘나들기를 시도하는 탈모더니즘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소설은 단편, 중편, 여행일기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조합 속에서 나이폴은 탈식민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를 공통분모로 하여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다. 나이폴의 사회 정치적 시각은 서구의 식민화와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면서 후기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후기 문학세계는 한때 그가 비판했던 모든 판단과 편견을 유보하고 그가 직접 방문해서 경험한 세계와 사람들의 살아 꿈틀거리는 삶을 포용하는 폭넓은 세계관을 보여준다.

‘인도-백만인의 반란’이란 책에서 나이폴은 그동안 보여준 자신의 조국에 대한 민족적 개념의 해체를 나타낸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는 방법’이란 소설에서는 인류에 대한 그의 세계관을 발전시켜 그가 어느 특정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성을 가진 작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폴의 문학은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공동체의 운명과 전지구적 문제로 확산되는 문화적 구심성과 원심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나이폴은 서구 식민주의 폭력에 의해 야기된 민족과 인종 간의 대립과 분열, 소외와 불신, 조롱과 자기기만을 극복하고 전지구적인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향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고 있다.

김상률(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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