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I'감시대상'포함 파장]'언론탄압' 국제공인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34분


국제언론인협회(IPI)가 한국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처음으로 ‘언론자유탄압 감시대상국’에 포함시키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언론 개혁’ 드라이브가 명백한 정치적 의도로 촉발된 언론탄압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서 공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적잖은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 스리랑카 등과 함께 감시대상국에 오른 것은 대외적 국가 신인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요한 프리츠 IPI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 내내 “한국 언론상황은 ‘비참한 상황(Horrible Situation)’”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날 국정홍보처와의 만남을 통해 “상호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했다”고 밝히는 등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IPI 북구 5개국 결의문▼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북구 5개국 14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국제언론인협회(IPI) 노르딕 위원회는 3일, 4일 이틀에 걸쳐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한국 내 언론 자유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노르딕 위원회는 IPI 이사회가 국제 언론에 한국 내 언론상황의 진행 사항을 더 깊이 주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한국을 IPI 언론자유탄압 감시대상국(Watch List)에 포함시키는 것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또한 노르딕 위원회는 3개 신문 사주들이 공식 재판없이 보석허가도 받지 못한 채 구속된 것에 대해 특별한 우려를 표명했다.

IPI특별조사단은 7일 민주당과 자민련 등을 방문해 이번 언론 사태에 관한 견해를 듣고, 한국방송협회장인 KBS 박권상 사장과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 등도 만날 계획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기자회견 주요 발언내용▼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 "현상황 정치적 동기에 의해 촉발"

▽요한 프리츠 IPI사무총장〓IPI가 특별 조사단을 결성한 것은 △국제 언론사회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좋지 못한 상황을 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보석허가가 주어지지 않는 언론사 대주주의 구속을 인권 관련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이와 함께 한국사회 내에서 합리적인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하는 뜻도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부조리한 요구를 하며 공격을 하고 있는 몇몇 언론단체들에 대항하고, 한국 당국에 의해 촉발한 현 상황이 명확한 정치적 동기에 의해 촉발됐다고 보며, 이를 알리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후 곧바로 국세청 조사가 시작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특별조사단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우리는 수년 동안 넬슨 만델라, 시몬 페레스 등 각국 대통령을 많이 만난 바 있다. 김 대통령이 우리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것은 분명 좋지 않았던 선택이다. 논의가 있어야만 협상이 가능하고 대립을 예방할 수 있다.

IPI의 감시대상국 제도는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된 국가를 지정해, 개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는 언론 탄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는 부정적인 언론관련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감시대상국에 오르면 1년에 두번씩 조사해 계속 리스트에 올릴 것인지 판단한다. 페루는 1년반 동안 감시대상국에 올랐으나 올 1월 명단에서 빠졌다.

오스트리아에서 6월30일 MBC가 한국갤럽과 실시해 방송한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이번 언론 사태가 언론탄압이라고 보는 시각이 반수를 넘었다.

우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에서 “진정한 언론 개혁은 언론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믿는다.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3개 신문사 사주 구속과 13명 추가 기소는 한국 언론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브루스 브룩만 IPI 미국이사〓1959년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바 있다. 그만큼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런데 40여년 만에 다시 와서 보니 언론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험에 처해있는 것을 보고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있는 매체들은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은 심지어 이번 사태를 ‘마녀 사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독립 매체와 기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에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발표한 워싱턴포스트의 사설이 현 상황을 적절하게 잘 묘사한다. 이는 “정권은 시민단체와 몇몇 언론을 등에 업고 비판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 세무조사가 비판적인 언론을 위협하려는 명백한 의도에서 취해진 측면이 있다는 IPI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닐스 오이 IPI 노르웨이 이사〓10개월 전 김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내 조국에서 봤다. 그 당시 김 대통령은 자신의 여생을 한국에서의 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바치겠다는 것을 듣고 감동했고,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료들에게서 한국에서 언론 관련 사건이 발생한 것을 듣고 놀랐다.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실망했고 놀랐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언론 관련 논쟁이 매우 상호 적대적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는 보다 다양한 논의가 가능할 줄 알았다. 이번 특별조사 내용을 IPI 노르딕위원회에 보고하겠다.

▽로저 파킨슨 WAN 회장〓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국가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한국 정부가 비판적인 논조의 신문에 경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탄압하려 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주도하는 언론 입법안은 신문사 대주주의 소유 지분을 30%로 제한하려는 것인데 이는 경영권을 박탈하려는 의도이다.

정부가 친정부적이지 않은 신문사들의 사설을 놓고 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공격하는 것이다. 비판적 언론들의 기자들은 논조가 흔들리지 않게 언론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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