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四字小學' 술술 서울 염리초등교 김윤환균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32분


서울 염리초등학교 5학년 김윤환군(11)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자책을 펴든다.

한자능력 검정시험용 900자가 빼곡히 적힌 책장을 넘기며 하루 50자씩 한획 한획 써가며 음과 뜻을 익힌다.

“다음달 시험이 있어요. 초등학생은 4급까지 딸 수 있는데 한 단계 낮춰 5급에 도전할까 생각중이에요.”

학급 회장에 각종 경시대회의 상장을 휩쓸어오는 만능 재주꾼인 김군은 학교에서는 사자소학을 줄줄 외는 ‘한자 신동’으로 더 이름이 나 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천자문을 뗐고 2학년 때 교장선생님의 한자교육 강화 방침으로 사자소학을 처음 접했다.

김군의 공부방 한쪽에는 수학경시대회 모형항공기비행대회 과학상상화그리기대회 국어경시대회 등 각종 대회의 상장과 함께 ‘한자 경시대회 금상’ 상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김군은 사자소학중 특히 효행 부분의 글귀를 좋아한다며 외워 보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어서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내 몸이 내 것이지 왜 부모의 것이냐”고 묻자 “아버지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만나 내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과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신능현 예급부모 아신불현 욕급부모(我身能賢 譽及父母 我身不賢 辱及父母·내가 어질게 행동하면 그 명예가 부모에게 돌아가고 내가 어질지 못하게 처신하면 그 욕이 부모에게 돌아간다).’

또다시 “내가 잘한 일에 대해 왜 부모가 칭찬을 듣게 되느냐”고 묻자 김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절 가르쳤으니까요. 태권도 학원에서 버릇없이 굴다 사범님한테 걸리면 ‘너 엄마 앞에서도 이러느냐’고 하세요.”

하지만 김군이 이해할 수 없는 대목들도 있다.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해온 것은 맹종(孟宗)의 효도이고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은 것은 왕상(王祥)의 효도다. 부모 섬기기를 이같이 하면 효도를 한다고 말을 해도 좋을 것이고 능히 이와 같이 하지 못하면 금수와 다름없다(禽獸無異)’.

문제는 ‘금수무이’라는 대목.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해오기란 무척 힘든 일인데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짐승이라 비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게 김군의 생각이다.

김군은 “네 글자 속에 이렇게 복잡하고 깊은 뜻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한자 공부의 묘미를 설명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어를 배우기 위해 한자 공부는 필수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신문에 난 한자를 읽어보라며 아들의 한자 학습을 닦달한다.

하지만 어머니 지정숙씨(38)는 “외동아들인 윤환이가 버릇없이 굴지 않고 곧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사자소학에 담긴 옛 성현의 말씀 때문 아니겠느냐”며 인성 교육의 효과를 높이샀다.

이 때문에 김군은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만화 프로를 보다가도 “과일 씻어 오너라” “설거지해라” 하며 심부름을 시키면 “눈 속에서 죽순은 구해오지 못할망정…” 하며 두 말 않고 일어서서 ‘맹종의 효’를 조금이나마 실천하려 애쓴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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