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씨 태평양 1만5000km 요트횡단 성공

  • 입력 2001년 8월 10일 19시 03분


엄청난 파도가 덮쳐왔다. 파도가 마치 거대한 절벽 같았다. 방향타와 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은 선체에 묶어둔 상태였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정신이 혼미해 오지만 이겨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4월 12일. 북위 43도 36분, 서경 131도 28분의 북태평양상에서 초속 35노트의 태풍을 만나 침몰의 위기를 맞았던 순간 그의 뇌리에는 오직 아내만 떠올랐다.

9일 오후 11시경 요트로 태평양 단독 횡단에 성공한 뒤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요트경기장으로 무사 귀환한 김현곤(金鉉坤·41·부산 강서구 미음동)씨의 항해일지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4월 2일 크루저급 요트 ‘무궁화호’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항을 출항한 김씨의 는 열흘만인 같은 달 12일 첫 위기를 맞았다. 그는 “18시간의 외로운 사투 끝에 태풍을 이겨내고 나니 눈물이 났다”고 당시의 극한 상황을 회상했다.

고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월 20일 미드웨이섬 부근을 지나다 또다시 태풍을 만나 마스트와 돛의 연결핀이 부러져 항해가 중단되는 등 15차례 이상의 풍랑이 그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러나 오랜 준비기간과 정신력 덕분에 그는 130일 만에 1만5000㎞의 대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처음 태평양 요트 횡단을 꿈꾼 것은 고교시절이었다.

독서부에 속해 있었던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해양서적을 탐독하며 꿈을 키워나갔고 결국 요트부가 있는 부산 수산대(현재 부경대)로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인 88년 8월에는 태평양 횡단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좌절된 사연이 미주 동아일보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는 졸업 후 경북 구미의 한 전자회사에 들어갔지만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이유로 곧 사표를 던지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막노동과 채소장사, 컴퓨터 홈페이지 제작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요트 구입자금을 모았다.

그는 “어렵게 빌린 요트로 항해감각을 익히고 겨울에는 부산 금정산 정상에 올라가 텐트 안에서 거의 나체로 며칠씩 지내는 혹한 훈련도 했다”며 “항해도중 음식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일주일씩 굶는 연습도 여러 차례 했다”고 회고했다.

오직 요트탐험을 위해 자녀도 갖지 않고 결혼식도 못 올렸지만 부인 임순애씨(40)가 불평 한마디 없이 내조해준 것이 그에겐 가장 큰 힘이 됐다.

그는 올해 초 주위의 협찬 제의도 뿌리치고 스스로 모은 5만달러를 들고 캐나다로 건너가 중고 요트를 구입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는 “올해 11월말에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와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요트 세계일주를 떠날 계획”이라며 “내년 6월경 귀환해 결혼식도 올리고 자녀도 가질 생각”이라며 희망에 부풀었다.

<부산〓석동빈기자>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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