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Ani]<파이널환타지>파이널?이제부터 시작이겠지

  • 입력 2001년 7월 27일 10시 52분


‘샴푸 광고 찍으면 딱이겠다’ 뜬금없이 왠 샴푸 얘기냐고? 100% 3D 애니메이션 <파이널 판타지>를 보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현란한 그래픽으로 채색된 액션도 근원적인 생명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심오한 주제도 아닌 주인공 아키의 찰랑찰랑한 머리결이었다. 바람결에 섬세하게 하늘거리는 6만가닥의 머리칼은 <파이널 환타지>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파이널 환타지>를 볼 때 주의할 점 두가지. 첫째, 옆사람이 눈치채기 전에 잽싸게 벌어진 입을 다물자!

“최대한 살아있는 인간처럼 표현하고자 했다”는 제작진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머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잡티에 모공까지 드러난 피부의 질감, 손을 뻗어 꼭꼭 눌러보고 싶은 도드라진 핏줄, 눈동자에 가늘게 퍼져있는 핏발 등 소름끼칠만큼 사실적으로 창조된 가상인물들. 그들이 스크린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1억5000만 달러의 엄청난 제작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붉은 실루엣을 꿈틀거리며 인간의 푸른 영혼을 삼켜버리는 외계 생명체와 폐허가 되버린 2065년의 어두침침한 뉴욕시가지도 눈을 떼기 힘들다. 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의 원작게임 개발자이기도 한 사카구치 히로노부 감독은 이처럼 풍성한 볼거리를 풀어놓으며 새로운 환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럼 둘째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커피 한 사발쯤은 마셔두자!

“세계 영화사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도약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파이널 환타지>. 누가 뭐래도 시각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다. 하지만 비주얼만으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갈 순 없는 법. 시각적인 매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놓치고 있는 부분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테크놀로지의 향연은 성큼성큼 수십보를 앞서가고 있지만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의 성격은 엉거주춤 주저앉아 버린 느낌이다. 기술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을리는 만무하니, <파이널 환타지>의 영상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엔 충분해도 마음까지 붙들어 놓기엔 영 내공이 딸린다고 볼 수 밖에.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자랑하는 가상인물들은 껍데기만 남아버린 박제처럼 차갑게 느껴지고, 유머감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이 진지하기만 한 주인공들은 터져나오는 하품을 막지 못한다. "영화는 결국 플롯과 캐릭터다. 두 요소가 받쳐주지 않으면 기술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슈렉>의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의 말은 어찌나 정곡을 찌르는지. 사카구치 히로노부 감독이 이 말을 들었다면 가슴이 뜨끔했을 거다.

물론 <파이널 환타지>에는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던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 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 감독은 세상에 대한 신중한 고찰과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바라보는 진지한 시각을 ‘생명과 에너지의 기원은 어떤 영혼에 있다’고 믿는 아키와 시드 박사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런 심오한 주제에 간간히 농담 따먹기 몇마디라도 뿌려줬더라면…. 환타지 세계의 담장밖에 서서 구경만 하다온 기분이 드는 건 심각한 주제를 더 심각한 얼굴로 얘기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미 아키가 다시 등장하는 다음 프로젝트 제작을 발표한 사카구치 히로노부 감독. 테크놀로지에 짓눌린 감성을 되살리는 것이 그의 다음 여정이 되길 바란다. 이 정도로 마침표를 찍기엔 환타지의 세계는 너무도 무한하지 않은가.

김미영/FILM2.0 기자 diverse94@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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