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선방 대중화 "마음의 때 벗겨보자"

  • 입력 2001년 7월 22일 18시 28분


《‘탁 탁 탁.’

입승(입승)의 죽비소리에 등을 마주하고 돌아앉은 선객들이 일제히 가부좌를 튼다. 산중의 소슬바람과 매미소리 대신 이따금 자동차 경적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린다. 그래도 선정(선정)에 몰입한 머리 긴 선객들은 누구 하나 깊은 삼매경(삼매경)에서 헤어날줄 모른다.

‘이 뭣고’, ‘나는 누구인가’.

번잡한 도심, 서울 강남구 신사동사거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민선방 ‘무불선원’의 풍경이다.

여름을 맞아 산중 사찰을 찾아 참선수행으로 마음의 때를 벗겨내며 휴가를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유명사찰에서 주최하는 수련회는 웬만큼 서두르지 않으면 신청조차 힘들다. 굳이 멀리 갈 필요없이 가까운 도심 선방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첩첩산중 고승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선(禪)’이 이제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선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은 최근 들어 선의 대중화를 내걸고 속속 문을 연 도심 속 시민선방들.

이전의 불교사찰들이 중장년층 이상의 여성신도인 ‘보살’들 위주로 운영된 데 반해 시민선방들은 좀 더 다양한 계층을 불러모으고 있다.

99년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신사동 무불선원에는 인근 직장인을 비롯해 교수와 대학생,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몰린다.

번뇌와 욕정이 흘러 넘치는 이 혼탁한 세속도시에서도 과연 탈속과 깨달음은 가능할까. 2년째 이곳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 노해조씨(45·여·프리랜서 작가)는 “그동안 잡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는데 이 곳을 찾은 뒤 마음이 맑아졌다”며 “큰 깨달음을 얻기보다도 세상을 좀 더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생겼다”고 말했다.

올 2월부터 참선을 시작한 대학강사 이은씨(34·여)도 “요즘처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 혼란한 시대에는 특히 ‘내 안을 먼저 들여다 보라’는 선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만나거나,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일 모두 이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작 그 ‘마음’을 모른 채 무엇인가 채우는데 급급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원의 참선지도를 맡고 있는 상묵 스님은 참선이 산중 사찰에 들어앉은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이유를 강조해 설명했다.

시민들에게 24시간 개방되는 무불선원은 좌선법과 화두참구법 등을 지도받으며 좌선수행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참선법회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와 7시에 열린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는 참선체조와 호흡법에 대한 강의도 있다.

▽길상사〓광화문에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길상사는 도심 사찰이면서도 여느 첩첩산중 고찰 못지 않은 청량한 곳이다. 옛 요정 대원각의 한옥건물에서 ‘속기(俗氣)’를 씻어낸 후 시민들을 위한 명상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민선방 외에 종교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명상의 집’ 등이 있다. 매월 넷째주 주말에 참선수련회가 열리며 7, 8월에는 네차례에 걸쳐 3박4일간의 참선수련회가 열린다.

▽도선사 무차선원〓청담스님을 비롯해 성철 스님 등 역대 종정이 수행을 했던 서울의 대표적인 사찰. 지난해 문을 연 시민선방인 무차선원은 200여평 규모에 100명 정도가 참선할 수 있으며 여름엔 하안거, 겨울엔 동안거를 빠짐없이 실시한다. 매달 3만원을 내면 참가할 수 있다. 내달 6∼8일에는 초보자들을 위한 참선수련법회를 연다.

▽조계사〓문화교육관 내 설법전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반과 오후 7시에 열리는 금요시민선방은 금강경과 조사어록을 중심으로 참선 강의를 들은 뒤 1시간 동안 참선실습을 한다. 매월 셋째주말 대웅전에서는 밤샘 수행을 하는 철야정진 법회도 갖는다.

▽인천 용화선원〓인천지역의 유일한 시민선원이지만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도심 시민선방이 있다. 매일 300여명의 대중들이 찾아와 화두를 들고 선정에 빠져든다. 종교, 연령, 남녀 구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매일 오전 3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된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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