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고기잡이 13년 유영구씨의 한강에서 '희망 낚기'

  • 입력 2001년 5월 23일 19시 00분


《햇살이 눈부신 23일 아침 행주대교 교각 아래 은빛 물살을 가르며 작은 고깃배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싣고 평생 그물을 던지며 살아온 사람들. 수도권 시민의 젖줄인 한강에는 강을 터전 삼아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들의 또 다른 삶이 있다. 최근 한강물이 조금씩 맑아지면서 한강으로 되돌아오는 어부들이 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가까운 행주대교와 방화대교 부근에 가보면 늦봄 황복과 장어 등을 잡아 올리는 어부들의 분주한 모습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고 있다.》

▽은빛 물살을 가르며〓23일 오전 행주대교 북단 고깃배 나루터. 1t 미만의 소형 고깃배 10여척과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 그물 및 부표 등이 전부인 작은 나루터다. 13년째 행주대교와 방화대교 사이를 오가며 그물을 던져 온 어부 유영구씨(54·경기 고양시 행주동)가 살그머니 배를 띄웠다.

능숙한 솜씨로 키를 잡고 물살을 거슬러 강 복판으로 나가 부표 밑에 매달린 그물을 걷어올린다. ‘강망’이라는 원통형의 그물에는 밤사이 걸려든 뱀장어 황복 잉어 붕어 메기 등 10여종의 ‘자연산’ 민물고기 수십마리가 펄떡거렸다.

황복과 장어 메기 등을 골라낸 어부는 그물 속에서 몸부림치다 흠집이 난 잉어나 누치같은 잡어는 물 속으로 다시 ‘방생’한다.

유씨가 하루에 던질 수 있는 그물의 개수는 5개로 제한돼 있다. 하루 평균 20㎏ 안팎의 고기를 잡아 중간상에게 넘긴다. 3, 4월엔 뱀장어 치어가 많이 잡혔다. 지금은 황복이 제철.

“10년 전만 해도 고기에서 악취가 나 양어장이나 낚시터에 넘길 수 있는 치어가 아니면 쓸모가 없었죠.”

그러나 불과 5, 6년 사이에 물이 맑아지면서 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황복을 비롯해 모래무지와 웅어 등 사라졌던 물고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3, 4년 전부터 바다를 거슬러 올라오기 시작한 황복은 요즘 하루 5㎏이나 잡혀 어부들에게 톡톡히 재미를 안겨 준다. 중간상에게 ㎏당 5만원 정도에 넘기는 황복은 음식점에선 ㎏당 10만원 이상 나가는 최고급 어종. 다만 아직까지 한강물에 대한 ‘불신’이 남아서인지 ‘한강 황복’이 아닌 ‘임진강 황복’으로 둔갑해 문산 등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아쉽다고 유씨는 말한다.

고양 토박이인 어부 임정옥씨(47·고양시 행주동)는 “예전처럼 물을 길어다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하류의 수질은 수산용수 1급 판정을 받을 정도여서 잡아 올린 고기들을 바로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말했다.

▽한강은 삶의 터전〓이들처럼 한강 하류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어부들은 고양시와 파주군에 100여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한강의 서울수계 내에서는 86년부터 어족보호 등을 이유로 어로행위가 금지돼 방화대교 아래서만 합법적인 어로가 가능하다.

또 추가로 어업허가가 나지 않아 이들이 지닌 어업허가권은 2000만원 이상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어부들의 연수입은 2000만∼3000만원 정도.

그러나 한강 하류 대부분이 군사작전 지역으로 통제되기 때문에 어로활동에 대한 제약도 많다. 수시로 보안교육을 받아야 하며 고기잡이 할 때는 반드시 노란색 모자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도 있다. 그나마 올해부터 제한적으로 동력선의 운항도 가능해 졌다.

서울시 상수도 관계자 못지 않게 수질변화에 민감한 한강 어부들. 강물이 오염되면 고기들이 바다쪽으로 내려가 버리기 때문에 금세 알아차린다.

임씨는 “인근 하수처리장에서 폐수를 그냥 흘려보내면 한동안 고기 구경을 못할 때도 많다”며 “고기들은 그만큼 민감한데 정작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